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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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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Jul 05. 2020

엄마는 꿈이 뭐야?

아이가 물었다.

서른 넷의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내 나이 서른 중반.

이제 아무도 내게 그런 것을 묻지 않는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나 들어본 듯 한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아득해졌다.


내 꿈이...뭐였더라?

언제적 꿈을 말해줘야 하지?

작가, 변호사, 기자, 국정원 직원...
어릴 적 장래희망들을 차례대로 더듬다가 멈칫했다.


금방 아이가 엄마는 꿈이 '뭐였냐'고 물었던가?

엄마는 꿈이 '뭐냐'고 묻지 않았던가?

아무도 묻지 않아서 말할 기회도 없었고

나조차 믿지 않아서 말할 용기도 없었던

지금, 나의 꿈.




아이를 낳고부터 쭉 나는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 처음엔 누군가 읽어주기만 해도 좋았다. 가끔씩 달리는 댓글은 그대로 하루치 행복이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블로그 이웃들의 응원은 육아의 원동력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허무함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흔들어 놓았다. 블로그에 매진한 지 5년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나는 나의 글을 가장 사랑한다. 내 글보다 좋은 글은 차고 넘치지만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봐도 봐도 재밌는 글은 오직 내가 쓴 글 뿐이다. 그건 자부심이라기보다는 내게서 파생된 말덩어리에 갖는 당연한 애정이고 집착이다. 아까웠다. 그저 컴퓨터 화면에서 휙휙 넘겨지는 내 글들은, 드넓은 하늘에서 내일이면 새로운 구름에 밀려 사라질 뜬구름같았다. 뜬구름을 만질 수 있는 종이에 잡아두고 싶었다. 책. 책 한 권이면 이 허전함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만 되면 끓어오르던 가슴은 아침에 일어나 식전 댓바람부터 싸워대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차게 식어버렸다. 내 글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감히 꿈이라고 칭하지도 못하고 홀로 가만히 들춰보았다가 다시 덮어놓곤 했다. 요즘 무슨 일 하느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그저 아이들 키우며 집에 있노라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엔 '글'과 '책'이 떠올랐다. '글'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책'은 유일한 꿈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꿈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했던 건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경우에 지금보다 더 초라해질 내 모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릴없이 서른 넷이 된 나에게 지금, 꿈이 뭐냐고, 아이는 물어온 것이다.

아이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엄마는 책을 만들고 싶어. 내가 쓴 글로 책을 한 권 만드는 게 엄마 꿈이야."

"아 그렇구나. 엄마, 내 꿈은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랑 골리앗 개구리가 있는 곤충박물관을 만드는 거다?!"

아이는 딱히 엄마의 꿈이 궁금했다기보다 자기 얘기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갑작스러웠던 그날의 문답은 오늘까지 내게 길이 되었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서른 넷 엄마의 꿈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꿈꾸기에 적당한 나이같은 건 없다고.

너 역시 언제가 됐든, 뭐가 됐든 네가 꿈꾸는대로 이뤄낼 수 있다고.


그래서 썼다.

과연 이 글이 무언가로 엮일 수 있을지, 내가 투자한 시간들이 보상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날에도 불안감을 패대기쳐가며 닥치는대로 썼다.


그렇게 쓴 글 중 두 편의 동화로 기회가 닿아 얼마 전 출판사 미팅을 다녀왔다. 그 중 하나는 공모전에서 떨어진 내 첫 단편동화였다. 지극히 현실적이라 뒷맛이 씁쓸한 동화, 이런 게 동화가 될 수 있을까 나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써내려갔던 글이었다. 뜻밖에도 출판사 대표님은 그 글을 좋아해주셨고, 다른 직원분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의 강력한 의지로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


업계표준이라는 계약금은 내 생애 글로 벌어본 돈 중에 가장 큰 돈이었고 나는 붕 뜨는 기분을 붙잡아 앉히려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책이 나와야 나온거지, 설레발치지 말자.'

결과물이 나오려면 1년쯤 걸린다고 했다.


계약을 하고 2주가 지나자 나는 다시 초조해졌다.

동화책 두 권 내고 끝낼건가? 심지어 계약만 했지 아직 책이 나온 것도 아니잖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이 정도로 작가라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 결국 계약한 것도 엎어지고 아무것도 안 되면 어떡하지?

초조한 마음으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아이의 하교시간이 됐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나는 평소처럼 멋없이 물었다.

"오늘은 별 일 없었어?"

차마 "안 혼났어?"라고 대놓고 물을 수는 없어서 매번 에둘러 물어보는 엄마에게 매번 직사포로 대답하는 아이.

"응. 오늘은 한번밖에 안 혼났어. 근데 선생님이 내가 만든 아이클레이를 뺏어갔어."

"응? 뭐라고?"
"오늘 아이클레이로 내가 살고 싶은 집 만들기를 했는데, 나는 사슴벌레 집을 만들었거든? 근데 선생님이 사슴벌레를 만들었다고 내껀 집에 못 가져가게 했어."

"선생님이 네가 살고 싶은 집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사슴벌레가 살 집을 만들었어?"

"아니 사슴벌레 모양 집. 사슴벌레 모양으로 집을 지어서 반은 우리집으로 쓰고, 반은 곤충박물관으로 쓸려고 했단 말이야."

"아이고. 그럼 선생님한테 지금처럼 네 생각을 말해보지 그랬어."

"말할 틈도 없었어. 아이클레이는 창의력과 상상력인데, 아 선생님은 왜 내 창의력 무시해."

아이는 몹시 맘이 상한 모양이었다.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반, 아이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 반으로 말을 고르다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엄마도 고민이 있어."

"뭔데?"

"너 엄마 꿈이 뭔지 알지?"

"어. 엄마 글로 책 만드는 거."
"맞아. 근데 엄마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은 어른들에게도 많이 읽히는 글인데, 엄마가 그런 글로도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있지. 엄마는 공룡글도 썼잖아."

"다행히 공룡글은 출판사 사장님이 마음에 들어해주셔셔 책으로 만들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엄마가 쓴 다른 글도 좋아해줄까? 다른 사람이 엄마 글을 좋아해주지 않을까봐 겁이 나."

"엄마, 일단 써. 그리고 안 되면 다시 쓰면 되지."

가끔 아이들이 던지는 말의 날카로움에 급소를 찔릴 때가 있다. 아이의 대답은 짧지만 확실한 진리였다. 진리에는 구질구질한 변명의 수사가 필요없다.


명치를 찔려 잠시 말을 잃은 나에게 아이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엄마, 글이 잘 안 써지면 창의력을 발휘해 봐."

아무래도 아이는 요근래 창의력이라는 단어에 꽂힌 모양이다. 뜻을 알고나 쓰는건지 궁금해졌다.

"창의력이 뭔데?"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거야. 베토벤, 바흐, 브람스처럼."

'야, 예시가 하나같이 너무 거장 아니냐. 니 엄마가 그 정도 급이 되냐.' 라고 속으로 생각만 하면서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기껏 창의력을 발휘했는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헛수고만 하면 어떡해? 오늘 네가 사슴벌레 모양 집을 열심히 만들었는데 선생님이 네 뜻을 몰라주고 가져가버린 것처럼, 내가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 어떡해? 그럼 너무 속상하잖아. 그럴 때 넌 어떻게 해?"

"엄마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으니까 뺏겨도 돼."

마침내 나는 아이에게 카운터펀치를 맞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나면 결과는 상관이 없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그래서 오늘의 결과가 실패처럼 보여도, 멀리 보면 쓸모없는 일이란 건 없구나.

공모전에서 떨어진 글로 출간계약을 맺는 일도 생기는 것처럼.


오늘도 아이에게서 배운다.

학교 다니는 머리가 확실히 나보다 낫구나, 감탄하면서.


내게 꿈을 일깨워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이. 아이의 꿈은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와 골리앗개구리가 있는 곤충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과연 아이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이의 꿈을 이루자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곤충박물관을 지을 돈을 마련하는 재정적 문제부터 국내반입금지인 해외종 곤충을 들여오는 법률적 문제까지.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그 정도의 돈과 능력을 갖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곤충박물관을 짓겠다'는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이다.


"당연하지.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근데 엄마, 해외종은 진짜 우리나라로 못 데려와?"

자신의 열정은 굳게 믿지만 법률적 문제에 부딪쳐 미리서부터 머리를 싸맨 아이에게, 혹시 도움이 된다면 엄마가 그 나라 대통령과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아이는 그러면 안심이라는 듯 이내 밝은 얼굴이 되었다.


이토록 단순하고 용감하던 아이도 나이를 먹어가며 자칫 실패처럼 보이는 오늘에 좌절하기도 하고 멀어보이는 꿈에 낙담하기도 할 것이다. 오늘 아이가 내게 주었던 깨달음을 언젠가 그가 필요로 할 때 그대로 돌려주리라.


꿈꾸기에 적당한 나이같은 건 없는 거라고.

일단 시작하라고, 그리고 안 되면 다시 시작하라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단지 그것만으로,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내 꿈을 응원하는 것과 꼭 같은 맘으로 아이의 꿈을 응원한다.

그러자면 오늘 나부터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 갑자기 꿈을 바꾼 아이. 곤충박물관장의 꿈은 아이의 동생이 물려받았다.


아무렴 어떠랴. 오래도록 너를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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