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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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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Jul 06. 2020

첫째가 고래고래 속삭인다

엄마, 나를 제일 사랑하지?

둘째로 자란 사람은 모른다.

먼저 난 자의 비애를.


엄마의 둘째였던 나는 모른다.

내 첫째의 비애를.

.

.

.

첫째에 이어 둘째도 남자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아- 안되는데..."

그 짧은 문장에서 굳이 감정을 읽어낸다면 그건 탄식이었다.


그래서

<첫째보다 둘째가, 둘째보다 셋째가 예쁘다>는 선배부모들의 말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웬걸.

둘째를 낳고보니

세상 모든 어린 것은 <갑>이었다.

세상 모든 어린 것은 갑이다. 어설픈 손꾸락 끄트머리까지 느무 귀엽다.

어린 것이 둘일 경우엔 상대적으로 더 어린 것이 <갑 중의 갑>이다.

둘째가 아주 어릴 땐, 더 예뻐서라기보다 덜 여물어서 자꾸만 눈이 가고 손이 간다.


이후로 둘째는 첫째가 그 시기에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하며 무럭무럭 커나가는데.

아기의 절대적인 귀여움, 같은 시기 첫째모습에 대한 그리움, (셋째계획이 없는 고로)다시 없을 아기시절에 대한 아쉬움까지 더해지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둘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어릴 뿐, 자체적으로 충분히 어렸던 첫째.

그러나 눈치만큼은 빤한 첫째는

동생이 커가는 만큼 자기 안에서 커져가는 묘한 감정을 어쩌지 못해 힘들었을 게다.


세살 끝자락에 동생을 맞아

네살.

다섯살.

여섯살의 어느날.

삼년간 묵혀둔 속내를 돌리고 돌려

엄마와 동생 앞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나를 제일 사랑하지?"


이렇게 요령 없는 놈이 내 첫째다.

말귀 다 알아듣는 동생이 옆에서 눈을 또록또록 굴리고 있는데 애미라는 자가 어찌 누구 하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답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럼. 제일 사랑하지. 엄마는 하라랑 정이를 제일 사랑하지.

최선의 방어였다.


"아니아니. 정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엄마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 첫째의 재공격.


- 엄마는 하라랑 정이를 제일 사랑해. 둘 다 엄마아들이니까 똑같이 사랑해.

이런 구린 대답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내 입으로 이 레파토리를 시전하게 만드는구나.


이 문답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고

회를 거듭할수록 집요하고 교묘해졌다.


마침내 눈물까지 글썽이기에, 둘째가 없을 때 첫째의 귀에 속삭였다.

- 엄마는 하라를 첫번째로 사랑해. 엄마가 첫번째로 낳은 아기니까.

"엄마 정말? 정말이야? 진짜?"

첫째의 눈이 와락 기쁨으로 가득 찬다.

- 그럼~ 정말이지. 그런데 이건 하라랑 엄마랑만 아는 비밀이야. 그러니까 정이 없을 때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알았지?

"응 엄마! 응!!"


이걸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오늘도 첫째는 동생 앞에서

몹시도 비밀스러운, 그래서 더 눈에 띄는 몸짓으로

몹시도 과장된, 그래서 더 잘 들리는 속삭임으로

"엄마, 이건 비밀인데 엄마는 나를 제일 사랑하지?"

내 귓가에 고래고래 속삭인다.


내 요령 없는 첫째.

집요한 첫째.

가련한 첫째.



***3년 전 서랍에 담아두었던 글입니다.

     글 속에서 여섯살이었던 첫째는 현재 아홉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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