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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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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Apr 26. 2020

모두가 나를 보지 않아도 괜찮아

자잘한 나의 이야기를 하면 돼

주목받고 싶다. 속된 말로 관심종자. 그렇다, 나는 관종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관종이 있다.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관종과 실패한 관종. 전자는 ‘스타’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후자에게는 대놓고 '관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스타가 됐든 관종이 됐든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그 근질거림이 내 안에도 있었다. 이 근질거림은 평소엔 조용히 기회를 엿보다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특히 격렬하게 날뛰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바라볼 때면 짜릿했고 어쩌다 그 앞에서 한 건 해내기라도 하는 날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호감어린 말과 시선 속에 노출된다는 건 정말 뿌듯한 일이었다.


혹시 러너스 하이라는 용어를 아시는지. 장시간 달리기로 인한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찾아오는 쾌감과 행복의 절정을 뜻하는 말이다. 마라토너들은 이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자꾸만 다시 달리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때 내가 느끼는 짜릿함이 딱 이랬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관종스 하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엄청난 초조함과 압박감을 이겨낸 끝에 찾아오는 절정의 도취감, 관종스 하이를 맛본 관종들은 자꾸만 무대를 갈구하게 된다.


그렇다고 스스로 나서서 "제가 분위기 한번 띄워보겠습니다"할 배짱같은 것도 없는지라 나는 대개 쩌리였다. 그러니까 내겐 언제 어디서나 좌중을 휘어잡는 독보적인 끼 같은 게 부족했다. 그냥 친구들 중에서 젤 웃긴 애, 일반인 사이에서 '개그콘서트'로 불리는 딱 그 수준이었다. 그들의 기대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막상 관계를 맺고 뚜껑을 열어보면 쉽게 시작된 관심이 금방 식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역시 나를 멈칫하게 했다. 관심은 받고 싶었지만 관계는 유지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관심을 갈구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런 내게 글쓰기는 좋은 수단이었다. 글 속에서 나는 사람들 앞에 보여지고 싶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사람들은 글로 나를 유추할 뿐,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스물 다섯에 엄마가 된 나는 육아로 잠시 묻어두었던 욕구를 블로그에 쏟아 부었다. 하나 둘 댓글이 늘어가고 공감이 쌓일수록 짜릿함을 느꼈다. 오가는 댓글 속에 싹트는 호감. 이 얼마나 부담없고 간편한 관계란 말인가. 나는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마침내 관종의 나그네길을 청산하고 블로그 세상에 정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블로그 동산에서 관종공주는 댓글공감왕자들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해피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안의 관종이 다시 고개를 처들었다. 남은 인생을 엄마로, 아내로만 살다가 마치고 싶진 않다고 끊임없이 나를 충동질했다. 내 이름으로 쓴 책을 갖고 싶었다. 그저 화면 위에서 흘러가는 글을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만들고 싶었다. 그거면 이 길고 긴 관종의 세월에 마침표, 까진 아니더라도 중간정산쯤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그 문구를 보게 된 거다. "망설임 작가의 길을 늦출 뿐."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았다. 그 길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한번에 붙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 번, 아니 더 떨어진 것 같다. 기억도 안 난다. 구겨진 자존심과 함께 기억도 구겨서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서랍 속 글들을 발행해도 좋다고, 브런치가 내게 작가의 자격을 허락한 건 '집밥'에 대한 이야기를 세 편쯤 썼을 때였다. 당시 브런치를 통해 진행되었던 <우리家한식>공모전의 주제는 '집밥'이었고, 우리집 가훈은 2011년부터 쭉 '집에서 밥먹자'였으며, 나는 이 집의 주방장으로서 10여년을 일해왔다. 집밥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결과는 통과. 심사에 통과하고서야 나는 이 플랫폼이 요구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서 보고싶었던 것은 애매한 '필력'보다 확고한 '정체성'이었다.


겨우겨우 입구를 통과해 들여다 본 브런치 세상에는 '정체성'에다 '필력'까지 장착한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과연 내 글로 책을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저 썼다. 그 해 11월,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가했다. 예상대로 낙방이었다. 귀걸이를 하나 사는 것으로 셀프수상을 마친 후, 수상작과 수상작 선정이유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알았다. 모두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수상작과 수상이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는 너의 이야기를 하라고. 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몇몇의 사람들에게 가서 닿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보편적이지 않은 너만의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다고.


처음이었다. 낙방이라는 결과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린 건. 나는 확신했다. 내 글도 책이 될 수 있다. 이 날의 확신이 매일같이 나를 빈 화면 앞으로 끌어다 앉힌다. 당장 오늘 출간작가가 되지 못해도, 모두가 나를 보지 않아도 괜찮다. 자잘하게 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러다 혹시 운이 좋아 그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누군가에게 가서 닿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길로 달려가 오래 전에 봐두었던 귀걸이를 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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