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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Sep 25. 2020

먹지 마세요, 스텐팬에 양보하세요

스텐팬초보는 반드시 망하는 요리 3대장

주부 10년차, 나는 스텐팬 유저다.


1. 어렵다

2. 비싸다

3. 무겁다

위의 세 가지 이유로 많은 이들이 사용을 꺼린다는 무시무시한 스텐팬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것은, 고백하건대 나의 자발적인 의지는 아니었다.




울엄마는 스텐팬 유저였다. 내가 수능도 보기 전부터 엄마는 고가의 스텐팬을 딸의 혼수로 점찍어두었다. 결국 내 나이 스물다섯에 엄마는 염원을 이뤘고, 엄마가 사 준 고가의 스텐팬은 내겐 그저 무겁기만 했다. 실제로도 무거웠고 팬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무거웠다.


울엄마가 큰 돈 써서 사준 것들이니 저걸 쓰긴 써야 할텐데 도저히 쓸 자신이 없었다. 한번 큰 맘 먹고 꺼낸 스텐팬 위에서 계란후라이인지 잿더미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을 창조해낸 후로는 더욱 자신감을 잃었다. 다행히 나를 너무 잘 알았던 엄마는 혼수꾸러미 속에 중저가의 코팅팬들도 함께 챙겨주었다.


신혼 초, 한참 요리열정이 불타는 시기. 고가의 스텐팬들 위로 먼지가 보얗게 내려앉는 동안 중저가의 코팅팬들은 코팅이 벗겨질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집 주방을 코팅팬이 점령해가던 그 때, 전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건 찬장 속 스텐팬 뿐만이 아니었다. 늘 그렇듯 복병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건강처돌이' 남편은 모든 코팅제품을 불신했다. 그는 수시로 내게 코팅팬의 유해성에 대해 설파하며 집에 있던 코팅팬을 하나둘씩 처분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내가 친정에 다녀온 사이 모든 코팅팬을 치워버리기에 이르렀다.


"하라아빠, 여기 있던 후라이팬 다 어디 갔어?"
"후라이팬? 거기 (스텐팬) 있잖아."

"아니 이거 말고(코팅팬)."

"그거 코팅 다 벗겨졌드라. 내가 갖다 버렸다."

"울 엄마가 사준 걸 왜 니가 버리는데?"


여덟살 위의 남편을 처음으로 '니'라고 불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스텐팬을 꺼냈다.

새 코팅팬을 들이기엔 2년 가까이 찬장을 지키고 있는 스텐팬의 존재감이 너무 묵직했다.


그렇게 스텐팬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한때)생선(이었던 것)구이는 대실패.


그로부터 한달하고도 보름만에

온전한 삼치구이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주부 10년차.

어느덧 스텐팬 8년 차.

가장 어려운 요리를 꼽으라면


3위는 생선구이

2위는 두부부침

대망의 1위는

.

.

.

단연 계란후라이를 꼽겠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망한 계란후라이(출처 : https://pxhere.com/)


계란후라이.

웬만한 요리고자도 그럭저럭 해내는 세상 쉬운 요리(?)라지만

스텐팬 위에서만큼은 지옥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이 계란후라이다.

이것이 결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듯 네이버 검색창에 스텐팬을 입력하면 일곱 개의 연관검색어가 뜨는데, 이 중 유일한 요리가 '계란후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텐팬에서 계란후라이를 굽다가 빡쳐봤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원래 계란후라이는 스텐팬이랑 나눠먹는 거"라고도 하던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박수를 쳤다.

스텐팬 입문기에는 그런 자세가 좋다.

내 입에 들어오는 것보다 스텐팬 바닥에 눌어붙는 게 더 많을 때도 있지만, 온 세상에 "고수레!"를 외치는 마음으로 스텐팬 앞에 서면 어떤 결과물 앞에서도 담담해질 수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스텐팬을 길들이는 것인지 스텐팬이 나를 길들이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스텐팬 입문을 꿈꾸는 이들이여,

스텐팬 따위에게 길들여질 것인가.

그래도 사람인데 스텐팬보다는 내가 많이 먹어야하지 않겠는가.


다음번에는 스텐팬 망요리 3대장, '생선구이, 두부부침, 계란후라이'를 중심으로 나의 스텐팬 정복기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지금 갖고 있는 스텐팬을 캐롯마켓에 올릴까말까 고민중이었다면 다음 글이 올라올 때까지, 딱 일주일만 유예기간을 두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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