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스텐팬과 계란후라이를 나눠먹고 싶지 않다면 필독
본격 스텐팬 정복기를 시작하기 전에, 고백하고 가야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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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가장 최근에 내가 구운 갈치구이다.
갈치를 이따위로 구워놓고 스텐팬 정복기 따위를 끄적여도 되는 것인가.
걸레짝같은 갈치구이 앞에서 잠시 현타가 왔지만,
매일매일 '정복'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혼자 정신승리해가며 <우격다짐 스텐팬 정복기>를 시작해 보겠다.
1. 팬 데우기
스텐팬 정복의 기본은 예열. 예열이란 쉽게 말해 팬을 충분히 데우는 것인데 본디 스텐팬이라는 게 적당히 데워서는 적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처참한 실패작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면 스텐팬 앞에서 충분한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스텐팬 입문기에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진다. 약불은 복장이 터지고 강불은 스텐팬이 터져나갈 수 있으므로 중불에서 충분히 예열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래서 충분히가 정확하게 몇 분이냐?"라고 피해가고 싶은 질문이 돌아온다면 집집마다 화력이 다르고 화구가 다르고 팬의 두께도 다르므로 정확한 시간을 단언할 수는 없다고 애매하게 피해갈 수밖에. 대신, 스텐팬이 충분히 예열됐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달궈진 스텐팬 위에서 물 묻은 손가락을 튕겨 물방울을 흩뿌렸을 때 물방울이 동그랗게 이슬을 맺히며 팬 위를 굴러다니면 예열완료. 이 때를 넘기지 않고 기름을 붓는다.
2. 기름 데우기
잘 달궈진 스텐팬에 기름을 두르고 기름이 데워지기를 기다린다.
이 때 기름에서 연기가 날 때까지 두어서는 곤란하다.
대관절 기름은 또 얼마나 데우느냐.
이렇게 팬 위에서 기름이 중간중간 섬처럼 패이거나(좌)
또는 기름이 팬 가장자리에서 아래와 같은 모양으로 강강술래를 하면(우) 기름 또한 잘 데워진 것이다.
3. 재료 표면의 물기&냉기를 충분히 제거한다.
충분히 달궈진 팬에, 적당히 달궈진 기름까지 갖췄다면 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반은 재료표면의 건조상태에 달렸다. 재료의 표면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팬에 들러붙을 확률이 높다. 아무리 예열을 잘 해놔도 겉이 덜 마른 두부나 조기를 올려놨다가는 바삭한 껍질을 스텐팬에게 모조리 빼앗기게 된다.
생선이나 두부처럼 표면이 촉촉한 재료들은 가급적 재료를 미리 상온에 꺼내두어 냉기를 가시게 한 뒤 키친타올이나 자연건조로 물기를 충분히 제거해야 한다.(같은 이유로 계란후라이를 할 때에도, 계란을 미리 꺼내두는 것이 좋다.) 빠른 물기제거가 어렵다면 표면에 밀가루와 쌀가루같은 마른가루를 묻혀 굽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총정리.
1. 팬을 중불에서 충분히 예열
- 물방울이 팬 위에서 이슬처럼 맺혀 굴러다닐 때까지
2. 기름 또한 중불에서 예열
- 기름이 팬 중간중간 패이거나 춤추듯 가장자리를 돌 때까지
3. 재료 표면의 냉기/물기 제거
- 물기 제거가 어려우면 마른가루 묻히기
위 세 가지 사항만 지켜주면 이렇게
숟가락만으로도 홀랑 뒤집히는 조기를 구워낼 수 있다.
정작 내가 오늘 구워낸 갈치는
걸레짝이었지만.
팬도 데우고 기름도 데우고 물기도 제거하고 심지어 밀가루까지 묻혔건만.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마음이 급해져 한 면이 충분히 익기 전에 홀랑 뒤집은 것이 패인인 듯. 10년 가까이 스텐팬을 썼음에도 똥손 스텐팬유저는 종종 실패를 맛본다.
그럼에도 스텐팬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세척/관리가 쉽다.
-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 친환경소재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하다.
- 스텐팬쓰는 여자라는 주부만렙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토록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텐팬 유저가 현저히 적은 이유는 이 일련의 적응과정이 <정신건강에 몹시 해롭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강력한 하나의 단점으로 인하여 스텐팬을 쓰지 않을 개인의 자유 역시 존중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