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날필 Oct 27. 2020

가훈의 탄생

집에서 밥먹자

2011년 결혼 이래로 쭉 이어져 온 우리집 가훈은 매우 직설적인 탓에 다소 촌스럽기까지 하다.


집에서
밥먹자


남편이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하면 대번에 "요즘 사람답지 않게 고루하다"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같은 말을 내가 하면 "요즘 사람같지 않고 야무지다"고들 한다. 어째서? 밥은 당연히 아내가 한다고 생각해서겠지. 얼핏 열린 반응같지만 얼마나 닫힌 생각이란 말인가.


우리집 가훈은 일방적인 강요나 희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함께> 만든 것이다. 뭐, 사실 밥은 주로 내가 하긴 한다. 그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시간에 건나물도 불리고 육수도 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들을 미리 해놓으면 다섯시부터 슬슬 저녁준비를 시작해도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너끈히 상을 차릴 수 있다.


예전에 친정엄마가 늘 식탁에 앉으며 숟가락도 들기 전부터, "기름냄새를 많이 맡아서 생각이 없다. 너거나 많이 먹어라." 선언하시곤 했는데 아들만 둘인 나는 태생이 친정엄마가 될 됨됨이가 아닌 것인지 기름냄새를 맡으면 맡을수록 군침이 돈다. 위장이 요동친다.


그렇다. 난 내가 한 밥이 제일 맛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무난한 식성을 타고나서 뭐든 해주는대로 잘 먹는다. 앉은 자리에서 쑥갓 한 바구니를 해치우는 첫째에 비하면 둘째놈은 좀 까다로운 편인데 어디까지나 제 형에 비해서지, 여섯살치고 과히 까탈스러운 입맛은 아니다.


제가 만든 요리에 만족하는 여자와 주는대로 잘 먹는 세 남자의 조합 덕분에 우리집에서 요리는 그럭저럭 할 만한 노동이다. 적어도 보람은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요리를 잘 하는 편일까? 객관적으로 평가하긴 어렵지만 요리를 잘 할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자평해본다.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시절부터 스무살이 되어 집을 떠날 때까지 다채로운 식재료와 다양한 조리법으로 차려낸 집밥을 먹으며 자랐다. 나의 엄마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다가 10대 후반부터 전라도에 정착해 쭉 살아왔다. 때문에 그 정체성을 어느 한 지역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경라도사람 혹은 전상도사람이다. 두 지역의 식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엄마 덕분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식재료를 두루두루 경험했고 그에 맞는 조리법 또한 섭렵했다.


얇게 편 소고기에 우엉을 넣고 돌돌 말아서 구운 뒤 간장소스에 조린다든지, 커다란 생선을 통째로 튀겨서 새콤달콤한 소스를 얹는다든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사다가 소금 팍팍 치고 숨 죽이고 삶고 득득 갈아서 추어탕을 끓여낸다든지,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요리들이 일상처럼 식탁에 올랐다.


그런 엄마의 딸인 고로 나는 식재료를 겁내지 않는다. 별안간 소금세례를 맞은 미꾸라지가 죽어라 날뛰던 모습과 이놈의 팔딱거림이 언제 멈추나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엄마의 서늘하게 신중한 무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살아있는 미꾸라지에 소금도 치는데 죽은 생선, 죽은 고기, 살덩이 좀 만지는 게 뭐 대수란 말인가. 대담함이야말로 요리를 할 때 굉장히 유리한 점이라는 걸 주부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대담하기 때문에 실험정신도 강한 편인데 이게 요리에 독이 되기도, 득이 되기도 한다. 미각이 둔한 사람의 실험정신은 대개 요리를 망친다. 다행히도 나는 쓸만한 미각을 가졌다. 무엇이 빠졌는지, 무엇이 들어가야 제맛이 날지, 또는 완성된 요리를 먹어보고 무엇이 들어갔는지 유추할 수 있다. 재능이라 할 만큼 뛰어난 정도는 아니지만 집밥을 요리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매일같이 밥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큰 강점은 먹는 걸 좋아한다는 점이다. 먹는 순간의 행복을 알기에 요리의 번거로움쯤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이왕 공력을 들여 만들어 먹을 거라면 하루에 최소 한 끼 정도는 온가족이 모여서, 맛있음은 물론이고, 가급적 건강에도 도움이 될만한 걸 먹고 싶다. 그래서 우리집 가훈이 <집에서 밥먹자>가 되는 데에는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 주로 밥을 하게 될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니까.




<집에서 밥먹자>를 고수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치가 않다. 단순히 '집'에서 밥을 먹는 것만으로는 집에서 밥먹자를 이행했다 할 수 없다. '밥' 또한 집에서 지어진 것이라야 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만든 밥을 밖에서 먹는 경우(흔히들 도시락이라고 한다)엔 어떨까? 마찬가지로 미션실패다. '집'에서 만든 '밥'을 온가족이 함께 '집'에 모여 먹을 때 비로소 집에서 밥먹자, 이 촌스러운 여섯 글자는 꽉 채워진다.


집안으로 퍼져나가는 음식냄새를 맡으며 두근거림을 공유하고 밥상에 마주앉아 그날 하루를 공유한다. 가끔은 오늘의 집밥에 대한 뒷얘기도 곁들어 가면서. 그렇게 우리가 함께 한 집밥의 시간들이 곧 우리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가 낳아 우리를 닮은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먹은 끼니수만큼 더더욱 우리를 닮아간다.


나의 삶이, 나의 밥이 나쁘지 않았다면 나의 아이들 또한 꽤 괜찮은 어른으로 커 갈 것이다. 

트렌디하지 않아도 좋다. 시대착오적이어도 좋다.

적어도 하루 한 끼, 집에서 밥먹자.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집에서 밥먹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