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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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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Oct 27. 2020

가훈의 탄생

집에서 밥먹자

2011년 결혼 이래로 쭉 이어져 온 우리집 가훈은 매우 직설적인 탓에 다소 촌스럽기까지 하다.


집에서
밥먹자


남편이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하면 대번에 "요즘 사람답지 않게 고루하다"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같은 말을 내가 하면 "요즘 사람같지 않고 야무지다"고들 한다. 어째서? 밥은 당연히 아내가 한다고 생각해서겠지. 얼핏 열린 반응같지만 얼마나 닫힌 생각이란 말인가.


우리집 가훈은 일방적인 강요나 희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함께> 만든 것이다. 뭐, 사실 밥은 주로 내가 하긴 한다. 그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시간에 건나물도 불리고 육수도 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들을 미리 해놓으면 다섯시부터 슬슬 저녁준비를 시작해도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너끈히 상을 차릴 수 있다.


매일같이 밥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큰 강점은 먹는 걸 좋아한다는 점이다. 먹는 순간의 행복을 알기에 요리의 번거로움쯤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이왕 공력을 들여 만들어 먹을 거라면 하루에 최소 한 끼 정도는 온가족이 모여서, 맛있음은 물론이고, 가급적 건강에도 도움이 될만한 걸 먹고 싶다. 그래서 우리집 가훈이 <집에서 밥먹자>가 되는 데에는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 주로 밥을 하게 될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니까.




<집에서 밥먹자>를 고수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치가 않다. 단순히 '집'에서 밥을 먹는 것만으로는 집에서 밥먹자를 이행했다 할 수 없다. '밥' 또한 집에서 지어진 것이라야 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만든 밥을 밖에서 먹는 경우(흔히들 도시락이라고 한다)엔 어떨까? 마찬가지로 미션실패다. '집'에서 만든 '밥'을 온가족이 함께 '집'에 모여 먹을 때 비로소 집에서 밥먹자, 이 촌스러운 여섯 글자는 꽉 채워진다.


집안으로 퍼져나가는 음식냄새를 맡으며 두근거림을 공유하고 밥상에 마주앉아 그날 하루를 공유한다. 가끔은 오늘의 집밥에 대한 뒷얘기도 곁들어 가면서. 그렇게 우리가 함께 한 집밥의 시간들이 곧 우리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가 낳아 우리를 닮은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먹은 끼니수만큼 더더욱 우리를 닮아간다.


나의 삶이, 나의 밥이 나쁘지 않았다면 나의 아이들 또한 꽤 괜찮은 어른으로 커 갈 것이다. 

트렌디하지 않아도 좋다. 시대착오적이어도 좋다.

적어도 하루 한 끼, 집에서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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