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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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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Nov 24. 2022

비빔면이 뜨거워서 우는 게 아니야

어른도 실수할 수 있고, 어른도 사과해야 한다.

"얘, 넌 그렇다고 우니?"

이로써 마지막 눈물샘까지 완전히 열렸다. 일말의 자존심을 지켜내느라 간신히 붙들었던 눈물이 두 줄기, 세 줄기로 불어나더니 종래엔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애꿎은 래이만 나와 제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며 등이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래이와는 4학년 때 처음 만났다. 래이는 우리반 왕따였다. 누구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반에서 가장 만만한 존재. 자타공인 우리반의 여왕벌, 수에게 밉보였던 탓이다. 보이지도 않는 권력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 정말 수의 몸에서 모두를 홀리는 페로몬이라도 나오는 것인지, 반 여자아이들은 수의 말이라면 꼼짝 못했다. 수가 표적을 정하면 수의 일벌들은 그 사실을 널리 퍼뜨렸고, 그때부터 표적은 공공연한 기피대상이 되었다. 닿으면 경멸이 옮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들은 래이가 곁에 오기만 해도 소스라쳤다.


웃긴 건 수였다. 제가 주도해서 래이를 따돌려놓고 정작 저는 래이와 밥을 먹고, 래이를 끼워 팬시점 쇼핑을 다녔다. 뒤에선 래이의 밥 먹는 모습이 꼴보기 싫다며 흉을 보고, 래이의 학원비로 은귀걸이를 뜯어낸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고작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의 것이라기엔 너무 시커먼 악의가, 끔찍했다. 그다지 정의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약삭빠른 축에도 못 끼었던 나는 래이와도 수와도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다.


볕이 좋았다. 체육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지독하게 싫어하는 체육 시간이었지만 그나마 제기차기는 할 만 했다.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제기를 차던 여자아이들이 수업종소리에 하나 둘, 수돗가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다같이 제기를 씻어댔다. 걷어차이고 땅에 구르는 게 제기의 본분이어늘, 새삼스레 씻고 말고 할 게 무어란 말인가. 어리둥절했지만 손을 씻기 위해 나도 줄을 섰다.


유난스럽게 제기를 씻어대던 아이들의 진짜 목적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댓명의 여자아이들이 푹 젖은 제기를 일제히 한 방향으로 흩뿌리며 털기 시작했다. 흙바닥에 구른 제기를 씻은 물, 그러니까 흙탕물은, 고스란히 래이에게로 향했다. 래이는 조금도 피하지 않고 그 물을 다 맞았다. 몹시 무기력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끝내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해도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래이의 얼굴은 흠뻑 젖어있었으니까.


짐작컨대 맨살에 닿는 차가운 흙탕물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킥킥거리는 웃음소리, 멸시의 눈초리 같은 것들이었겠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래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런 수모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잘못을 했다 쳐도 저런 식의 응징이 온당한가? 해맑은 표정으로 날것의 적의를 드러내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순수악이었다.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할 교정이, 그 순간만큼은 지옥 같았다.




어쩌면 래이가 그런 시간을 견디고 무사히 6학년이 되어 나와 다시 한 반이 되었던 건, 일생에 몇 안 되는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사실은 래이가 나를 볼 때마다 웃어보였다는 것이다. 너무 투명해서 상대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밝고 맑게 웃는 아이가 래이였다. 래이를 만나고 2년 만에, 나는 래이가 무척 잘 웃는 아이라는 걸 알았다. 딱히 래이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저절로 따라 나오는 웃음을 막을 재간도 없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래이는 내가 좋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나를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어째선지 래이는 나를 어른스럽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래이를 위해 정의감을 내보인 적이 없는데. 내가 정말 래이가 말하는 것처럼, 어른스럽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면 래이는 4학년 내내 그렇게까지 외롭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오히려 어른스러운 건 래이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이 래이를 향해 활짝 열렸다.


그날부터 래이와 나는 매일 서로의 집을 오가며 노는 사이가 됐다. 사실은 압도적으로 래이의 집에서 논 날이 더 많았다. 래이의 집은 우리집 바로 옆 동이었고, 무려 48평이었으며, 무엇보다 항상 비어있었다. 래이의 엄마는 우리 아파트 상가의 유일무이한 미용실 원장이었고, 아빠는 건축사무소에 나가 있을 때가 많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넓고 텅 빈 집을 온갖 사소한 놀이들로 가득 채웠다. 각자의 명함을 만들며 킥킥거리던 날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꽃에 물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친구가 필요해요'라는 오글거리는 문구가 새겨진 명함은 내게 오래도록 흑역사를 선사했더랬지. 아무튼, 그런 시시한 놀이만으로도 넘치게 즐거웠던 우리는 서로가 조금도 지겹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래이의 집으로 가는 길에 둘이 돈을 모아 비빔면을 샀다.

"근데 너 이거 끓일 줄 알아? 나 이거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비빔면을 처음 먹어본다는 래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비빔면과 라면 조리법이 어떻게 다른지, 비빔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오늘 꼭 알게 해주리라는 비장한 사명감까지 일었다.


웬일로 래이의 엄마가 집에 계셨다. 우리 손에 들린 비빔면을 보고 래이엄마는 반색하며 물을 끓였다.

"아줌마가 끓여줄게!"

내가 끓일 수 있다고 해도 래이엄마는 한사코 나를 식탁의자에 앉혔다. 어쩌면 늘 가게 일로 바쁜 래이엄마도 여느 엄마들처럼, 딸과 딸친구를 대접하는 로망을 품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자코 식탁에 앉아 래이엄마가 라면 끓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 그거 아닌데! 그거 아니에요!"

뜨거운 물을 버린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 위에서 비빔면 소스를 뜯으려는 행위는 옳지 않았다. 위기일발,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차분히 두 손을 내밀어 래이엄마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렇게 하시면 안돼요! 제가, 제가 할게요!"

"이게 맞아, 바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급한 나의 외침에 잠깐 멈칫했던 래이엄마는 별 유난을 다 떤다는 듯 픽 웃으며 그대로 소스 두 봉지를 짜넣었다.


막상 뜨거운 비빔면을 비벼보니 자기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지 뒤늦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래이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빔면을 냄비째 식탁에 올렸다.

"이미 끓여버린 걸 어쩌니. 그냥 먹어라."

김이 올라오는 비빔면을 앞에 두고 나는 말을 잃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래이엄마의 채근에 한 젓가락을 떠 입에 넣는데 눈물이 툭 떨어졌다. 꼭 비빔면이 못쓰게 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올라오는 억울함에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한데, 그 안으로 뜨거운 비빔면을 밀어넣으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급기야 비빔면에 입까지 데이고 나니, 이 상황의 참신함과 한심함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남의 엄마에게 차마 화는 낼 수 없으니, 그만 눈물이 나와버리고 만 것이다.


"어머, 얘! 너 우니?"

"날필아...울지마..."

내 눈치를 살피며 덩달아 울상이 된 래이에겐 미안했지만, 고작 열세 살, 이미 터진 눈물을 집어넣는 방법 같은 건 몰랐다. 급기야 래이엄마의 말이 가까스로 막아두었던 최후의 눈물샘을 건드렸다.

"얘, 넌 그렇다고 우니? 아줌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이게 울 일이야?"

젓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섰다.


다음날 교실에서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래이가 내게 다가왔다.

"날필아, 어제 우리 엄마가 너한테...바보라고 해서 기분 나빴지. 미안해."

듣고 보니까 나한테 '바보'라고 했던 것까지 떠올라서 더 기분이 나빠질 뻔 했지만, 래이는 죄가 없으니까. 나에겐 '비빔면 테러범'이지만 래이에겐 엄마니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아니야. 너한테 화 안 났어. 어젠 눈물 나와서 그냥 집에 간 거야."

"미안...우리 엄마가 원래 좀 그래..."


래이는 내가 어른스러워서 좋다고 했지만,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좀스럽기 짝이 없다. 망친 비빔면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열 셋의 찌질함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뻗대던 래이엄마의 옹졸함은 과연 얼마나 넓혀졌을지, 여태 궁금해하며 굳이 글까지 써제낀 심보를 보면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어른'이란 말이 단순히 '나이 먹은 인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이룬 이를 지칭하고 있음을 더욱 실감한다. 어른도 실수할 수 있다. 실수 한 번에 어른 자격을 내놓아야 한다면, 이 세상은 미성년으로만 가득하겠지. 그러나 자신이 어른이고 상대는 아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해야 할 사과를 회피하는 어른이라면, 글쎄 그에게 '성인(成人)'이라는 이름을 허락해도 괜찮을지. 비록 실수투성이 어른이지만, 사과만큼은 제깍제깍 잘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 정도는 이룬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야 고작 비빔면 한 봉지를 망쳤을 뿐이지만, 래이의 남은 날들은 어땠을까. 래이의 어느 하루도, 무엇 하나도 함부로 망쳐지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른스럽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데다가 고작 비빔면 때문에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았던 찌질한 나를, 변치 않고 좋아해 준 래이. 힘든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 6학년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필경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래이에게 뒤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더불어 내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어준 래이엄마에게도 예의상 안부를 전한다.


반면교사 反面敎師 :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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