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도 생각했을지 모르는 여정의 서막
아내에게 무심코 내뱉었던 말은 아니었다. 매우 긴 시간을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는 것"
선물이었다. 세상 밖, 그리고 아내의 뱃속으로부터 힘겹게 나왔던 아기는 우리 부부에게 축복과도 같았다. 그렇게 우리도 여느 다른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 1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아빠인 내가 해도 힘든 일이었고, 그런 아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는 엄마는 얼마나 더 힘들지 고민을 하게 된다.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희생을 치러야만 했기에, 부부는 때론 육아에 지쳐버리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마음이 상해 울기도 한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고,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지 않는 이상.
그래서 떠났다.
살 던 집을 한 달이나 비워둔 채.
여행이 갖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부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여가스러움을 선호한다. 연애를 할 때도 한 달마다 어디론가 여행을 꼭 다녔다. 그래서 이런 여정은 굳이 낯설지만은 않다. <여행>은 일상을 다듬어주고 깊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내와 다툴 때면 함께 있기 싫어도 떠났던 것이 바로 여행이었기에 일상으로부터 또는 육아로부터 서로 깊은 고민이 있을 때 여행을 통해서 극복해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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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누군가는 직장의 스트레스로부터, 누군가는 가족과의 갈등 또 누군가는 나 자신을 위해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우리는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매우 흡사한 고민을 갖고 있으며,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해결이 되었길 희망한다.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면서 여행을 기획한 이유는,
첫째는 1년 동안 육아로 고생한 아내의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서, 둘째는 평소보다 대화를 더 많이 시도하기 위해서, 셋째는 말 그대로 여행을 하고 싶어서다. 어쩌면 모두가 평소에 생각했을 법한 평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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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어보니,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성질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뭘 하나 더 건네주고 싶은 게 자식이고, 그런 자식을 볼 때마다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부모더라.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당신이 최우선이야. 나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딸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어 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미 나보다 더 빨리 바보가 된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를 했던 적이 기억이 난다. '너도 결국 바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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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바보처럼 결정을 내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편리함을 뒤로하고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시골에서 한 달 동안 산다고 하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상은 좋았지만 현실은 불편함 투성이었다. 그 흔했던 편의점 하나가 없다니, 심지어 가로등조차 없는 삼달리의 아주 시골 마을.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저 녀석, 수아란 존재의 역할이 컸던 모양이다.
잠시 고민에 잠겨본다. 제주도를 상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
화려한 풍경
맛있는 요리
사람의 향기
끝없는 바다
돌담과 오름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이 동시에 연상이 된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는 먼저 상상을 해본다. 가서 뭘 보고, 뭘 먹고, 뭘 할지 대충 그려보는 습관이 있다. 아마 행복한 상상일 것이고, 나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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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한 달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오자는 말을 들었던 아내는 곧바로 제주도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즐거워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기억에 남고 있다. 오랜만에 손글씨를 써 내려가던 아내가 그제야 현실을 파악했나 보다. "우리 정말 가는 거야?, 가도 되는 거야?"
그래. 가자.
큰 고민이 필요 없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고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1년 동안 수아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 아내(안나)이다. 때로는 큰 결정을 쉽게 해야 할 상황도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의 이 제안은 아내의 수락으로 인해 빠르게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 집을 알아봐야 했고, 제주도로 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으며, 응급 상황에 대비해 병원, 경찰서, 소방서 등의 위치를 확인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떠날 때 챙겨야 할 짐까지.
도심을 반복적인 일상을 탈출해, 제주 시골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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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의 대화는,
"안나 씨, 우리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볼까?"
"응!, 근데 우리 정말 가도 되는거야?"
"그래."
이 여정은 2017년 10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마치고 작성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