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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여행자의 시선
by 로우 Feb 05. 2018

여기는 비에이 입니다

눈꽃의 섬, 일본 홋카이도 여행 에세이





여기는 비에이 입니다





  전날 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던 것을 회상해본다. 내가 홋카이도를 찾았던 이유는 파란 하늘에 새하얀 눈으로 덮인 태어나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보는 풍경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그런 풍경 사진 한 장이 걸려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대 심리로 하룻밤을 보냈고, 드디어 오늘은 그렇게 원했던 홋카이도 비에이로 향하는 날이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자연농원에 갈 때도 나는 엄청나게 설렜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때 비행기에 오르던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은 떨린다. 그만큼 집 밖을 떠나 어디론가 향한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던 듯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떠나는 것에 대한 환상이 크고, 그 환상을 따라 여행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가봤던 나라를 세던 내가 이제는 가봤던 도시를 세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꽤나 여행을 다녀본 것 같은 착각에 든다.

비에이가 그랬다. 여행 좀 해본 내가 마치 정복해야 할 공간처럼 여겨지던 장소. 2년 전에 이미 홋카이도 여행 계획을 세워 둠에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 결혼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변명이랄 것도 없지만, 사실 이는 큰 변명거리가 되어 이제서야 내가 일본의 북반부, 시베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북해도를 찾은 것이다. 비에이는 그 이유의 중심에 있었고, 나는 이 시점에 풍경을 애타게 좋아하고 있었다. 상상해보건대, 아주 파란 하늘에 아주 하얀 눈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피사체들은 목걸이처럼 메고 다니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에 아주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홋카이도 여행은 이제 여기서 멈춰도 되겠다. 굳이 많이 볼 필요도 없이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들어본다. 어느 순간에 배웠지만 그 공간의 것을 모두 보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언젠간 다시 비에이에 있을 테니깐.












삿포로에 위치한 숙소, 그 앞에는 삿포로 팩토리라는 매우 큰 스토어가 있다. 삿포로 징기스칸을 먹고, 다양한 주전부리를 구매하던 곳이다. 이젠 이곳과도 안녕이다. 삿포로에서 총 3일 동안 머물렀지만, 이 도시는 나와는 그렇게 맞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숙소 안에 있을 때 더 포근했고, 따뜻했다.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이 계획도시는 여행지로서는 그리 흥미롭지 못했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유흥을 즐기는 것도 아닌 소심한 AB형이라 그저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눈에 띄는 음식을 먹는 것이 다였다.

그 와중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하코다테는 오히려 예전에 갔었던 가가와현의 시골 모습처럼 훈훈했고, 오타루는 매우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비에이는 어떨까? 숙소를 나와 미리 예약해뒀던 렌터카 회사로 걸어간다. 그리곤 더 북쪽, 비에이로 출발했다.



삿포로에서 비에이로 향하던 도로, 고속도로는 비싸도 너무 비싸지만 …

좋은 날을 만났다. 어젯밤 삿포로는 눈이 많이 내렸고, 심지어 흐렸기 때문에 오늘을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만약 날씨가 좋지 못해서 못 가면 어쩌지? 또는 예쁜 풍경을 망치면 어쩌지. 이틀 전에 동료 한 명이 가기로 했던 도시가 폭설로 인해서 기차가 모두 끊기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불안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오늘 날씨는 매우 좋았고, 그 어떤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나게 비에이로 향하면 될 뿐이다.




차량을 빌리면 이런 것이 좋았다. 가다가 멈췄다가.

아직 비에이에 도착하기도 전, 삿포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신묘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소복히 쌓인 눈과 내가 원했던 그 풍경. 온 세상이 눈 아니면 하늘이다. 그 중간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저 일반적인 집도, 예쁜 풍경이 되고






저 멀리 있는 작은 언덕도 왜 이렇게 예쁘던지.






기차 한 칸이 쓱 우리 옆을 지나간다. 어? 뭐지. 아마도 비에이와 아사히카와를 이어주는 철도로 보인다. 기차는 이미 지나갔고, 우리는 그 위를 들여다본다. 또다시 기차가 오지 않을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철로의 떨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기차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달마다 기차에 올랐다. 아마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기차를 타고 전국 여행을 하면서 나름 기차에 익숙해져 있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에서도 나는 JR패스를 끊고 앉아서 든 서서든 잘 다녔다. 근데 이게 20대 때 다르고 30대 때 다르다. 뭔가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아, 이런 여행을 하는 날도 이젠 몇 십 년 밖에 남지 않았구나.

아직 유로 패스로 유럽을 돌아보지 못했고, 그 유명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홋카이도 횡단 열차에 오르지도 못했으니, 우리 건강하자.




비에이 마일드 세븐 언덕 자작나무, 그 유명한

이게 자작나무인지 아니면 전나무인지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봐야겠다. 확실하건대, 이 나무들은 모두 자작나무다. 왠지 불에 잘 탈 것 같지 않은가? 자작하게. 비에이로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마일드 세븐 언덕의 자작나무 풍경이라고 모두 입을 모아서 말한다. 이렇게 예쁘니, 어서 가서 보고 싶을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 무거운 광각렌즈를 가방 속에 챙겼던가? 아주 넓게 보고 싶었던 내 바램이 통했는지, 오늘 비에이의 날씨는 아주 맑았다. 심지어 그리 춥지도 않았다. 사막 위에 모래가 흘겨 지나가듯이 자세히 바라보면 쌓인 눈 위로도 눈 알갱이들이 스르르 지나다닌다. 비에이의 곱디고운 눈은 오랜 시간 사람으로 인해 오염되지 않은 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편으로도 깨끗한 풍경이 이어진다.






절대 들어가지 말자. 그리고 내 앞의 눈조차도 훼손하지 말자. 이게 여행자인 내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예절이라고 생각했다. 저 발자국들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나는 한국인일 가능성을 아주 높게 봤다. 그리고 실제 오늘은 한국인들이 많다. "안녕하세요?"




해가 많이 떨어질 때쯤 부근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찾아 나섰다. 비에이는 삿포로보다 해가 더 짧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니, 도착하니 이미 그림자가 생겼고 해는 구름 사이로 가리게 생겼더라. 이처럼 홋카이도의 하루는 너무도 짧다. 애초 비에이를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을 그대로 실천했다면, 한국에 돌아와서 크게 후회할 뻔했다.




비에이 크리스마스 나무(Tree)






왜인지 모르겠다. 그저 비슷한 풍경인데, 이 장소를 떠나질 못한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우리 한글이 그리웠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 장소에서 어떤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슬며시 들려오는 겨울 소리를 귀가 아닌 눈으로 감상하면서 여행이 끝났음을 직감해본다.




그리곤 일몰이 다가왔다.






어찌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지…






흥미롭던 날이었다. 나는 오타루 운하에서 야경을 보고 미나미 오타루 역을 통해서 삿포로로 빠져나왔다. 그와 비슷한 시간에 함께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났던 동료는 그 운하에서 한국인을 만났고, 그 한국인과 아쉽게 작별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우리는 다시 비에이에서 우연처럼 만났다. 이게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비록 그녀는 지금 기차를 타고 삿포로로 가고 있겠지만…




여행 중에 친구를 사귀거나 만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고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것도 우리는 성격도 잘 맞는 것 같고, 취미나 취향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하고 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학수고대한다. 비에이는 특별했고, 나의 여행도 즐거웠다.




비에이에서 저녁 식사는 교자 라멘입니다. ⓒ rawkkim

김첨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지리도 운수 없던 날임을 알았을까? 너무도 먹고 싶었던 애비동(새우튀김덮밥)을 먹질 못했다. 하필이면 내가 찾은 날에 휴가를 가실 것은 뭐람? 결국 한국에 돌아와 애비동을 먹었지만, 아마 그 맛은 이 맛이 아닐 터이다. 비에이에서는 교자 라멘으로 그 쓸쓸함을 달래줬다. 비에이를 또 가야 할 이유를 여기서 한 가지 더 만들었다.




비에이 숙소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숙소 주차장이 꽁꽁 얼어버린 것이다. 일본은 주차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게 다루기 때문에 벌금을 피하기 위해서는 꼭 지정 주차 구역에 차를 넣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질 못하는 상황, 호스트는 우리 보고 눈을 치우고 차를 대란다. 덕분에 오늘 아침이 상당히 뻐근하다. 동전 파스라도 구매해둘 것을..

오로라라고 우겨도 될 정도로, 예쁜 아침을 맞이한다.




새벽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애매한 이 시간에 비에이를 들여다본다. 땅에는 눈이, 하늘에는 구름이 그리고 그 사이엔 나무들만 존재한다. 알고 보면 여기도 엄청난 시골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고향집 시골보다 훨씬 더.




이 풍경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까? 감도를 높이고 높여, 밝게 촬영해 본다. 다행스럽게 내 카메라가 버텨준다. 그래, 아직 이 카메라를 버릴 수 없어.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마일드 세븐 언덕으로.






짧은 밤에 눈이 더 쌓인 기분이다. 더 촘촘해진 이 풍경은 오늘 손님을 또 기다린다. 버스를 타고 오는 투어 여행자들 또는 나처럼 차를 몰고 오는 개인 여행자들. 아마 어제보다 더 화려하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소중한 이 풍경을 흑백으로도 남겨본다.







길은 여전하다. 이 길은 누군가가 계속 만들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 길을 소중히 걸어 나가면 된다.




여기는 비에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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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철들고 있는 평범한 글쓴이 그리고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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