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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Jan 05. 2024

나는 예민하다.

나는 예민하다. 잠자리나 음식을 가리는 예민함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곳의 바람, 소리, 햇살 같은 풍경의 결을 느끼는 것이 매우 예민하다. 감정의 융털이 풍성해서 감각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표면적이 넓다. 매 순간 감각이 별사탕처럼 터진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으로 들어오는 모든 감각이 어제, 오늘, 내일의 나와 연결된다. 영수증, 상품 태그, 버스 손잡이, 끝없이 시도하는 서퍼, 여고생의 가방에 달린 키링 같이 무용한 것을 바라보는 게 좋다. 내가 흡수하는 모든 감각은 재료가 되고, 나의 머릿속의 생산라인은 끝없이 뭔가 만들어낸다. 내가 현재에 머무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수집하고 분류하고, 느낀다. 타인이 보기엔 두서없거나 산만해 보이는 내 모습은 온 감각이 열려있는 탓이다.


다른 사람은 나와 같지 않다. 어린 시절 나의 다름이 이상해서 감추고 싶었다. 무덤덤하고 쿨한, 효율적인 인간이 되고 싶었다. 느끼고 싶지 않았다. 도무지 무덤덤해지는 건 잘 되지 않았다. 조금 지난 후엔 내가 느끼는 방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혼자 말하고 썼다. 해 질 녘 부서지는 파도 위를 흐르는 윤슬, 낡은 재즈클럽 테이블의 벗겨진 페인트칠 같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그런 걸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이상한 것도 그런 사람들이 나쁜 것도 아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 느껴지는 무용한 것들이 무지 사랑스럽다. 작고 보잘것없는 걸 오래 바라보는 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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