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횟감 대신 이야기를 손질하고 플레이팅해서 내놓는다.
10월에 한 달간의 뉴욕 여행을 떠난다. 센트럴파크 앞 숙소는 1박에 50만 원이다. 새삼 뉴욕 물가에 깜짝 놀라 작년에 했던 자기소개서 첨삭과 대필 알바를 다시 시작했다. 한 건에 적으면 3만 원, 많으면 15만 원. 꽤 쏠쏠한 부업이다.
첫 주에 총 6건을 작업하고, 51만 5천 원을 정산받았다. 한 주 내내 정신없이 자기소개서만 쓰고, 고치고, 쓰고, 고쳤다. 세 번째 자기소개서를 고치면서, 작년에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벌고서도 이 일을 그만둔 이유가 떠올랐다. 여유 시간도 돈으로 환산하게 되어서였다. ‘이 시간에 한 편 대필하면 돈이 십만 원인데……’ 그리고 내가 소개하고 싶은 ‘자기’들에 대한 경멸이 생겨서. 대체 자기소개서 한 편도 자기 손으로 못 쓰는 인간은 어떻게 생겨먹었담. 그렇게 점점 흐리멍덩한 동태눈이 되면서 일상의 윤기가 사라졌다. 돈 말고, 아무런 의미를 만들지 못해서 그만두었다.
잠시 맥북을 덮고서, ‘내가 왜 자기소개서를 고치지?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지?’ 라고 생각해 보았다. 내게 보내온 ‘자기’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케터, 승무원, 엔지니어. 어떤 직업을 위해 ‘자기’들이 걸어온 여정은 다 다르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가 다시 학업에 도전하기도 하고, 코로나로 접었던 승무원의 꿈을 되찾아 돌아오기도 한다. 아직 어떤 모양으로 발아할지 모르는 이야기의 씨앗이 나를 기다린다.
이제 작은 부두를 낀 조금 촌스러운 바닷가 마을에 있는 나의 가게를 생각한다. 새마을운동 깃발이 걸려있는 마을어촌계의 단층 건물 옆에, 해풍에 바랜 간판을 건 초장집이 있다. 낚시꾼들이 잡아 온 회로 주인장 마음대로 투박하지만, 제맛을 살리는 요리를 해내는 곳. 그곳이 나의 가게다. 나는 횟감 대신 이야기를 손질하고, 칼집을 내고, 조금 데치기도 하고, 플레이팅해서 내놓는다.
작업을 위해 만든 노션페이지의 이름을 ‘발견하기’로 바꾸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작은 가게, 이야기를 내어놓는 모퉁이의 작은 가게. 나는 작은 글쓰기 재주로, 한 사람 인생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평생 이야기라는 것엔 질려본 적 없다.
다시 맥북을 펼치며 발견하기 페이지를 열었다. 형편없다고만 여겨졌던 의뢰자들의 초안이나 이력서가 신선한 제철 재료처럼 사랑스러웠다.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려, ‘자기’들도 모르던 ‘자기’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작은 가게의 주인장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하는데 전혀 다른 일이 된다.
나의 작은 가게는 주인장이 뉴욕으로 떠날 여행경비를 버는 곳이다. 동시에 ‘자기’들이 저마다 인생에서 오래오래 기다려 잡아 온 활어 같은 이야기로 한 사람을 설명하는 글을 만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