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산책을 했나요

다음에 또 같이 걸어요.

by 정안




안녕하세요. 그간 현란한 프리토킹으로 과제를 넘어간 적이 많지만, 역시 저에게 가장 편한 표현 방식은 활자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읽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도무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툭툭, 써봅니다.



나를 좋은 삶으로 데려가는 산책하기.

11월 15일, 어웨이크 플로우를 처음 시작하며 잡은 주제입니다.


저는 어떤 산책을 했을까요? 그간 저를 찾아온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마음의 눈금이 촘촘해졌습니다. 이 정도는 좋다, 이 정도는 싫다. 좋은 걸 찾기 위해서는 좋다도 싫다도 알아야 하더라구요.



편안한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누워있으면 편안한데 그게 좋은 것이냐, 라고 하면. 아니더라고요. 가끔 아침 수련을 째고 아침 일곱 시, 이불 속에 누워있으면 편하긴 해도 좋지는 않았어요. 수련 후에 느낄 수 있는 ‘좋음’은 몸을 움직여야 오니까요.


직관적으로 편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배웠습니다. 저는 엄청 게으른 편이라 엉덩이가 무겁고 되도록 귀찮은 일은 피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귀찮은 일을 하지 않는 게 저에게 편안하니까요. 특히 몸으로 하는 일, 청소나 운동, 보이지 않게 뒷정리를 하는 일 등등.


아침 수련을 하고 나서 사바아사나를 할 때, 귀찮은 일을 해내고 오는 그 산뜻함을 마침내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게 편하고 찝찝한 거보다 훨씬 낫구나. 평생 저를 괴롭히던 어쩐지 나른하고 편안한데 찝찝한, 문을 꼭 닫아둔 방을 마침내 열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전보다 조금 더 귀찮은 일을 많이 하면서도 좋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괜히 태양 경배 자세를 하고 괜히 옷장 정리를 하고 괜히 동네 뒷산에 오르고. ‘난 힘드니까, 지쳤으니까’ 하고서 금쪽이처럼 떼쓰는 내 몸을 편안하게 방치하는 거보다 조금 성가시게 작은 움직임부터 만드는 게, 더 좋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간 내 어리광을 너무 받아줘서 나를 망치고 있던 부분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관객석에만 보이는 것들


내가 주인공이고, 주인공인 나의 역할이 100개쯤 되는 드라마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조연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내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마저도 나의 모습과 시선이고, 모두가 주인공이어야 해서 아무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이상한 영화입니다. 의젓한 큰딸, 똑똑한 팀원, 외향적인 친구, 게으른 나, 우울한 나, 질투하는 나. 내가 나에게 부여한 배역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흘러갑니다.


매일 관조하는 습관을 통해 저에게서 떨어져나오는 연습을 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인공인 나’라는 생각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주인공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죽음과 다를 바 없다, 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주인공을 내려놓으니 그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내 삶에 엑스트라로 스쳐 지나갔던 이들조차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독이고, 관객이기도 합니다.


뭔가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홀라당 관객석에서 늘어져서 바라보는 삶은 더 아름답고 다채로웠습니다. 내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 있고, 삶은 흘러가고, 그렇게. 무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겨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조금 속은 쓰리지만 억장이 무너지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창조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마음을 관찰하고 글을 쓰다 보니 발견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습니다. 고통도 기쁨도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서 바라보면 찬란합니다. 그 순간들을 글로 담고 나누는 일들은 더 아름답고요. 무심히 넘어갈 수 있는 순간들도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발견으로 창조되는 경험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 허겁지겁 책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세 권씩, 네 권씩. 수많은 글쓴이가 창조한 아름다운 글로 받은 위로들이 저를 살렸습니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그러하였듯 글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서였다는 걸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습니다.


요즘 제 안에는 도자기를 빚어내듯 아름다운 글을 빚고 싶다는 마음이 넘실거립니다. 이 마음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기대가 됩니다. 불안을 피하는 삶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빚어내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어웨이크 플로우와 함께한 시간 동안, 제가 한 산책을 기록해 봅니다. 함께 한 산책이기도 했지요. 이 글을 쓰는 제 방 창문 앞으로 또 청설모가 찾아왔습니다. 백련산 청설모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 모양입니다. 함께 한 선해 선생님, 해선 선생님, 상아님, 하선님, 창범님, 통무님, 하람님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합니다. 다음에 또 같이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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