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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즈 Jul 10. 2019

어쩌다, 유학

내가 왜 도대체 뭘 위해서 

브런치 인터페이스에 어울리게 글 제목을 최신 유행하는 에세이 제목 감성으로 써보았다. 어쩐지 서울 망원동 등지에 있을 법한 레트로 풍의 식당 이름 같기도 하다. 소제목은 캐러비안의 해적을 더빙하려 했던 모 아이돌의 톤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나도 학위를 따서 아무튼 이 곳을 탈출을 해야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제목 그대로 어쩌다 어떻게 유학을 오게 되었는지를 먼저 정리해볼까 한다. 


유학생들이란 자고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각자 다양한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 아니 유학을 오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만난 유학생들 모두 정말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나의 경우는 유학 결심의 계기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왜 왔냐고 굳이 자문자답해보자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보장받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박사과정을 진학하는 데 있어서 국내 박사라는 선택지는 차선책이었다. 내 전공의 경우 랩실이 없으니 장학금의 기회도 적고 내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졸업 후에도 박사라고 해도 국내 박사는 이를테면 6두품 같은 존재라, 일단 미국 박사를 먼저 도전해보고 안되면 국내 박사를 가자는 심산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만 꾸준히 살아왔던 촌놈은 유학이란 걸 한 번 가보고 싶고 해외의 박사과정이란 것에 한 번 입학을 해보고 싶었다는 점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정말 최초의 목적은 그랬다. 이 목표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막연히 꿈꾸었던 꿈이기도 했다. 그땐 책과 TV로만 세상을 배웠는데, 어린 마음에 유학 갔다 와서 책 내는 지식인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조기유학 붐이 불 때라 외국에서 공부하면 좋다더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서 나도 그런 곳에서 한 번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좋진 않으니 그냥 적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존버 했고, 지내다 보니까 박사과정은 그나마 펀딩 받기 쉽다는 걸 알게 되어서 도전해본 것이다. 까놓고 보면 되게 별 볼일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처음 유학 와서 강의실에 나가서 국제 학생들과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그 자체에 매우 감탄했다. 입학 그 자체로 인생의 목표 하나를 이미 이뤘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이왕 온 김에 그냥 돌아가면 아까우니까 학위를 딴다는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미국을 선택했냐면, 이유는 역시 돈이다. 내 전공은 미국 박사 과정이 펀딩이 제일 잘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적은 학비나마 자비로 낼 여력이 없었다. 유럽의 몇 학교들도 펀딩을 주긴 하지만 내 조건에 맞지 않았다. 아무튼 유학과 관련해서는 가족의 서포트를 거의 못 받는 상황에서 나는 무조건 학비+소정의 생활비가 보장되는 곳으로 가야만 했는데 다 따지고 보면 미국 박사과정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내 전공은 공대나 연구실처럼 돈이 잘 나오는 곳은 아니지만 미국 박사 시스템의 경우 1년 차만 어떻게 버티면 졸업 때까지 펀딩이 보장되는 분야이다. 그래서 어플라이 할 때도 펀딩이 잘 나온다는 학교를 우선적으로 지원했고 다행히 풀 펀딩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풀 펀딩도 쪼들린다는 건, 안타깝게도 유학 와서 알았다.)


물론 유학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준비를 해도 국내 토종이 영어 공부부터 시작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는 슬픈 사실을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를 시작하면서 알았기 때문에 유학 준비는 사실 상 석사를 마친 후부터 시작했다. 유학 준비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유학을 준비하느라 준비 시간도 굉장히 길었다. (사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점수 내느라 오래 걸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유학 전 직장생활 경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다행히 석사급 연구원으로 일했던 덕분에 아카데미 경력이 되긴 했다. (죄다 단기 계약직이었고 정규직 전환의 꿈도 미래도 없는 노동 환경이었던 터라 덕분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박사 유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자금이 충분했더라면 학부 시절부터 석사 유학을 준비해서 석사 유학을 온 후에 박사 과정을 곧바로 지원해서 유학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학부에서 바로 박사를 지원할 수도 있지만 최근 내 전공 입학생들은 어느 나라 출신이든 석사를 거치고 오는 편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꽤 많다. 내 전공은 입학 전의 다양한 경험보다는 학업이 끊기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사과정에서 펀딩을 주는 경우는 드물고, 결국 박사과정이 펀딩이 가장 빵빵하고 가장 높은 확률로 보장되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박사과정 유학을 목표로 했다. 다행히 박사과정 생은 일종의 커리어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학교 측에서 박사 과정생들의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일단 석사학위가 있는 상태니까 뭐 이것저것 부려먹기도 쉽고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부려먹어지고 있는 중이고. 물론 공무원이 되거나 국책기관에 들어간 후에 기관의 지원을 받는다든가, 아니면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다는 좋은 선택지가 있긴 했는데 내가 그냥 한국형 고시 같은 시험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 지원하지 않았다. 


사실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진짜 유학을 오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가고 싶었긴 했는데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온 일가친척을 통틀어서 어학연수 이상의 해외 체류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떻게, 왜 대학원 유학을 가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학과 선배들은 유학을 많이 갔지만 나랑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거리감을 꽤 느끼긴 했다. 나랑 비슷한 환경의 친구들은 보통 국내 박사에 진학하거나 석사만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편이었고. 나는 늘 내가 무리수를 꿈꾼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정말 한국에서만 공부했으니까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별로 없어서 합격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희망 없이 준비를 하긴 하되 유학 생활에 대한 청사진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인터넷에서 유학 팁 좀 찾아보고.... 석사 지도교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다들 이렇게 유학 지원을 한다니까 나도 맞춰서 서류를 준비해서 원서를 넣었다. 특별한 경험이나 인상깊은 목표의식도 딱히 없을 sop와 CV로 여기저기 원서를 넣어보았다. 심지어 학점과 영어 성적이 별로 좋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원 당시에 꽤 많은 학교로부터 리젝 당했을 때 매우 슬펐지만 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 펀딩과 함께 합격을 하긴 해서 이렇게 미국에 오게 되었다.


그래서 해외 유학은 정말 돈 많은 사람들만 하는 줄로만 알았던,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만 할 수밖에 없었던 17세 여고생이 막연히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을 십몇 년 후에 정말로 이루게 된 것이 아직도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뭐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 멍청한 머리로 과연 학위를 딸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은 딱히 없는데 학교가 날 뽑아놓고 돈도 주는 걸 보면 뭔 생각이 있겠지 싶긴 하다. 


브런치에 유학 팁을 풀 생각은 없다. 일단 내가 가진 유학 팁이랄 게 없기 때문이다. 팁을 알았으면 더 좋은 학교 갔을 거라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맨날 하고 있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 만족하고 있지만 같이 유학을 준비했던 친구들에 비해서 유학을 잘 왔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라 남에게 조언하기는 정말 부끄럽다.) 정말 여기까지 오는데 운이 팔 할이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게다가 내가 이 학교에 들이밀었던 각종 성적표들의 상태가 영 좋지가 않기 때문에 남에게 조언할 처지가 못 된다. 그리고 대학원 유학이란 게, 어차피 전공별로도 전략이 너무 다르고 자신의 위치 별로도 경우의 수가 정말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늘 그냥 자신의 직속 선배에게 얻는 조언이 그나마 가장 유용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같은 전공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만 대답해주는데 내 선에서는 그게 최선의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더 할 말이 없다. 


아무튼, 미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이러했는데 오고 나서의 생활에서는 또 너무 예상치 못한 일들이 팡팡 터져서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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