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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즈 Dec 29. 2023

박사 그만 둘 결심

나 학위 때문에 고생 깨나했지만 공부 안 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그동안 학위 과정과 관련해서 브런치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말도 못 하게 바빴던 데다가 개인적으로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어서 너무 무기력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목과 달리 그만 둘 결심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디펜스(최종논문심사)를 간신히 마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 필요를 느껴서 다시 브런치 글서랍을 열었다.




박사 과정을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걸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하늘의 기운과 지도 교수의 의지가 팔할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운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내 노력의 영역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일단 첫 연구가 늦어지고 결과도 제대로 나오지 않자 나는 엄청난 무력감에 빠졌다. 그 때문에 학위 논문을 위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연구도 줄줄이 늦어졌다. 연차가 올라가니 학교에서 주는 펀딩이 줄어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해졌다. 당장 렌트를 못 내는 지경이 되어서 학교 행정실에 emergency fund를 신청하기도 했고, 환율 때문에 미국 내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동기들은 빨리 졸업해서 어디 교수도 되거나 좋은데 취업해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데, 나만 골방에 처박혀 의미 없는 연구만 반복하며 카드 값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끝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막연하고 끝이 없었다. 이러다간 영원히 졸업을 못할 것 같았다. 졸업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생계가 목을 졸라왔다. 공부는 그만두고 어디 가서 일이나 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도무지 연구자로서는 재능이 없는 것이니 공부는 그냥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할 무렵에, 갑자기 지도 교수가 일단 논문 중간심사를 보자고 했다. 뜬금없었지만 나는 그거만 통과하면 일단 한시름 놓게 되는 줄 알고 일단 준비했다. 하지만 중간심사의 결과는 처참했다. 바로 통과를 못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추가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고, 그 바람에 학회나 취업 원서 같은 일정이 죄다 말린 것이다.


나의 연구와 공부가 너무 불충분한 상태에서 중간심사를 봤던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남들은 논문 다 쓰고 졸업하고도 남을 시점에 나는 중간 심사도 제대로 못 봐서 허덕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우울해지고 자괴감이 들었다. 남들보다 우수해도 살아남기 힘든 곳에서 나는 남들보다 한참은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쳐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이렇게 연구 성과도 없으니 나는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의 능력과 자격은 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간 심사를 망치고 나서 논문을 수정하면서부터 나는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왜 그간 성과가 미진했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간 연구를 제대로 완성해 본 적이 없어서(혹은 그렇다고 생각해서), 그 앞 과정에서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까지 결과를 만들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거였다. 커미티의 조언을 받은 대로 논문을 고치고 나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엉망인 연구는 아니었다. 그 논문으로 나중에 학회에 가서 발표도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흥미를 가지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때는 자신감을 조금 가지게 되었지만 아무튼 한참 후의 일이었다.


연구 결과와 내가 아는 지식, 그리고 나의 연구 아이디어는 보통 나만 알거나 전공자들 중에서도 그 분야를 다뤄본 사람들만이 알게 된다. 그 내용을 적어도 같은 전공을 연구하는 다른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게 포장해서, 내 연구가 왜 필요한지를 정리해서 논문으로 만들고 발표 형식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나는 연구 결과에만 집중하느라 그것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나니, 전반적인 연구 과정에서도 어떤 공부가 필요하고 결과물을 어느 정도 내야하는지에 대한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하지만 당시엔 그 느낌이 너무 어렴풋해서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결심으로 나머지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엔 이제 나의 시계가 숨 가쁘게 흘러갔다. 중간심사를 어쨌거나 통과했으니 이제 박사후보(Candidate 혹은 ABD, all but defense) 상태였다. 연구보다도 당장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얼른 구직부터 해야 했다.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CV, 레주메, 커버 레터의 초안을 만들어 여기저기 뿌렸다. 한국 회사에도 열심히 지원했다. 치열한 잡마켓에서 인터뷰 자리 하나라도 잡으려면 통상 100군데 넘게 지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지원서를 닥치는 대로 뿌렸다. 가장 가고 싶었던 한국의 연구소는 최종 면접까지 다 보고 떨어졌다. 그때만 해도 나는 다른 회사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봄이 되면서 미국의 회사와 학교에서도 연락이 왔다. 몇몇은 최종 인터뷰 후보에까지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에 가서 영어로 면접을 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지만 내가 많이 부족했던 탓일지, 끝내 오퍼 레터를 받지는 못했다.


여름이 되고 나서 나 자신이 당장 취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이제 생활비가 완전히 바닥나서 미국에서의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정도로 빚만 한 가득이었다. 펀딩이 없으니 일도 없어서 학교에 나갈 필요도 없었고, 미국 안에서 면접을 부르는 곳도 없으니 한국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졸업도 못하고 취직도 못한 채로 한국으로 들어오려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마지막 일정이었던 학회 발표를 마친 후,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황급히 주변을 정리하고 들어왔다. 다시 미국에 들어오게 된다면 아마 취직을 해야만 할 테니,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 몸이 그간의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에 많이 아프다는 걸 한국에 와서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받다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몇 달 취업 준비 때문에 미뤄두었던 졸업 논문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당장 취직할 수 없다면, 졸업부터 해야 했다. 아무리 가진 걸 짜내어도 더 이상 추가 등록금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있는 지도 교수와는 한국에서 화상 전화로 계속 연구 미팅을 이어갔다. 하지만 졸업을 제때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여서 나는 매일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너무 불안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생활비가 생기는 건 아니었고, 다달이 나가는 이자도 꼬박꼬박 갚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논문을 쓰면서 병행할 주말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했다. 미국에 오래 있는 동안 한국에서의 경력이 완전히 끊긴 탓에 정식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따로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논문 때문에 이미 정신력이 소진된 상태라 과외를 새로 할 엄두도 나지 않아서, 알바 공고를 보며 30대 경력단절 여성이 할만한 최저 임금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다.

 

당시엔 스스로가 굉장히 비참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가족들과 친구들은 드디어 한국에 돌아온 거냐며 반갑게 맞아주어서 양가감정이 들었다. 졸업 전까지는 사람을 되도록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자리가 있어서 한번 참석했다가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마무리 중인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가 나를 보며 미제박사라며 함께 논문을 쓰자고 제안해 주어서 (자세한 사연은 친구가 운영 중인 팟캐스트에 녹음되었다. 링크:https://podbbang.page.link/RV6nLfpwVkWnVRD58) 나는 그 친구와 함께 학부 모교의 도서관에 다시 다니면서 평일에 연구를 하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교통비와 커피값을 버는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한국 생활에 새롭게 적응하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무인 계산기 앞에서 한국의 신 문명을 통한 본인 인증을 해내지 못해서 한참을 서 있기만 하다가 친구가 도와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왜 박사까지 공부해 놓고 힘든 일을 하느냐는 (그런데 왜 이것도 못하냐는) 핀잔을 수없이 들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데도 혼자 눈치가 보였고 언제 졸업하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서 유학 갔다 와서 백수가 된 사람의 사연을 보면 내 얘기 같아서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연말쯤 되자 간신히 졸업을 바라볼 수 있을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랜 박사 과정 중 처음으로 지도 교수로부터 좋은 연구라는 말을 들었다. 엉망진창이었던 첫 연구와 달리 두 번째 연구는 내가 거의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독자적으로로 진행했던 거였기 때문에 자존감이 너덜너덜해진 와중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 심사를 제대로 망쳤던 터라 걱정이 많았다. 중간에 독감에 걸려서 며칠을 앓아눕기까지 해서 내가 제대로 논문을 쓰고 준비를 할 수 있을지 마지막까지도 걱정이 많았는데,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이루어졌던 논문 최종 심사는 다행히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어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오래 다녀서 학교에서 대충 졸업을 시켜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솔직히 나 자신의 역량에 자신이 없다. 저번 달과 나의 연구 역량이 특별히 달라진 건 아닌데 저번달엔 그냥 학생이었고 이번달엔 박사가 되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친구가 박사과정 내내 대학원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느라 자존감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위로해 주긴 했지만 크게 위안이 되진 않는다.


논문 제출도 끝난 지금은 도망갈 핑계가 없이 완전한 고학력 백수 실업자가 되어 그냥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디에도 취직이 안 되니까,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애를 썼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 어디 구석진 골방에라도 자리를 잡고 내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게 가능은 할지 걱정이 태산 같다. 제대로 된 소속이 없는 백수 연구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강사 자리라도 하나 구할 수 있을까. 그러면 또 학자금 대출은 언제 갚을 수 있을까. 남들은 대학 졸업하고 하는 걱정을 나는 이 늙은 나이에 뒤늦게 하고 있다. 대학교를 너무 오래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자리를 잡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일지는 모르는 상태로, 학위가 끝난 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브런치에 라면 보통 박사 학위 취득 후 교수가 되거나 번듯하게 취직한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을 나누는 얘기를 다들 쓰겠지만 나는 그렇게 쓸 내용이 없다. 하지만 이미 예전에 썼던 글도 박사 과정 중의 어려움이 살아있다는(?) 감상을 받기도 했고 지금의 힘든 상황을 굳이 숨기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거의 포장 없이 적어보았다. 이런 글도 도움이 될까? 싶긴 하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남겨본다. 나중에 내가 다시 읽어보면 다른 느낌일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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