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더 인간답게.
과학자로서 나는 신앙을 하나 가지고 있다. 전 우주에 존재하는 과학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단 하나뿐일 것이라는 것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법칙들은 인간의 존재 유무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인간이 그들을 알아차려주는 것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며,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은 때때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버겁다. 거대한 자연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그러기에 나는 자연의 일부만을 들어내어 샘플을 구상한다. 3차원 공간 속에서 혼합되어 있는 입자들 사이의 경계면을 생각하는 대신 종이 위에 직선을 하나 그어 경계를 만든 다음 위와 아래에 단어를 하나씩 쓴다. 숫자를 그 옆에 몇 개 쓴 뒤 실생활에서는 마주할 일이 없는 단위를 덧붙인다. 그렇게 자연에 존재하는 복잡한 물체는 검은 펜에 베여 나가 살이 발라져 까만 뼈만 남는다. 나는 이 그림이 자연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를 묘사할 더 나은 방법을 내가 당분간은 알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그림을 현실에 존재하는 샘플로 옮겨내기 위해 실험실로 향한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다. 인간은 연구를 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샘플을 준비하고 폴리싱 페이퍼로 그 윗면을 깎아내더라도 면은 완벽하게 평평할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흠이 가득하여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그저 인간일 뿐이기에 모조품조차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한다. 자연을 그대로 옮기는 것도, 머릿속의 관념을 현실로 옮기는 것도 인간의 육체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주의 무자비함에 맨손으로 덤비는 인간은 볼품없고, 초라하며 지나치게 인간답다.
지쳐버린 나의 뇌는 쉽게 절망에 빠지려 한다. 이렇게까지 고통받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운이 좋다면 지구 상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몇 개쯤 발견하여 내 이름을 그 옆에 작게 적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발견하든 발견하지 못하든지에 관계없이 그 사실은 우주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을 절대로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짧은 생을 불태우며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럴 때 나는 도시 앞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서 밤하늘을 올려보았던 그날 밤을 떠올린다. 은하수가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유난히도 맑은 밤이었다. 초록색 레이저 포인터가 밤하늘을 가르며 별자리를 하나씩 짚어나갔다. 압도적인 수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 사이에 인간이 만든 이야기가 하나씩 수놓아졌다. 인간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면, 그리고 인간이 그렇게 애쓰며 진리를 탐구하는 것에 이유가 있다면 그러한 순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별은 하늘에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여 만들어진 별자리에 대해 말하는 그 언어만큼은 오로지 인간만의 것이다. 우주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와 같은 말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밤, 아마 그 누구도 인간에게는 별을 새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연구란 그런 것이다. 서투른 솜씨로 손을 움직여 하늘을 비출 불빛을 만들고, 밤하늘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들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에 시간을 쏟는다. 서로의 생각을 말로 공유하고, 그렇게 우리가 하늘의 같은 부분을 바라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 소박한 행복을 느낀다. 연구자에게 자연은 소유할 대상도, 정복할 대상도 아니다. 자연이 그려낸 명화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 뒤돌아서면서 '아,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마지막에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연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