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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22. 2020

글을 쓰는 이유

그렇게 이 이야기는 끝난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 자주 울었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약점이었고, 하루빨리 고쳐야만 할 결함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어른이 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한 지를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모스 경도를 시험하듯이 서로와 맞부딪혔다. 약한 쪽에 흔적이 남았다. 한 번 그어진 흔적은 상처가 아물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볼에 눈물 자국을 남기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 이들은 싸워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풍부하며 복잡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만들 여유가 없었다. 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나는 나의 세상의 크기를 줄였다. 말을 할 때 더 이상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초점을 어긋나게 하여 시야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날카롭게 감정을 난도질하던 다른 이들의 존재가 무뎌졌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무게 없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런 포만감이 들지 않았다. 표정을 바꾸지 않고 얼마든지 삼킬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요함은 댐으로 막혀 만들어진 호수의 표면과도 같았다. 감정이 몸 안에서 갈 곳을 잃은 채로 꿈틀거렸다. 그리고 곧 나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오가는 것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수면을 깨뜨리고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그러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검은 호숫가에 앉아 찰칵거리며 오르내리는 표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유의어 사전을 한쪽에 띄어두고 단어를 몇 번이고 고쳐가면서 저 아래에 침전해 있을 무언가를 애써 묘사하려고 해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로 두서없이 말을 시작한다. 이렇게 지리멸멸한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뒤에 멈춰 서길 기다린다.


어느 지독하게도 맑은 날, 무례하고 무모하며 너무나도 감수성 넘치는 사람이 나타나서, 왜 그리도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물어주기를 바란다.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사람의 얼굴에 내 표정이 비추어지기를 바란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를 보며 오랫동안 웃음도 울음도 아닌 비명을 내지르기를 바란다. 


서로의 사이를 오가며 날카롭게 깎인 감정을 호수 안을 향해 던지고, 스스로에게 감추어왔던 상처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어 후벼팔 것이다. 둑을 터트려 원망을 모두 토해낼 것이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끝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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