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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07. 2020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남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일

우버(Uber) 기사를 믿는 이유

8월, 보스턴 로건 공항에 두 번째로 도착했을 때에 있던 일이다. 이코노미 좌석에 구겨진 채로 태평양을 건너고 북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온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도무지 캐리어를 끌고 Silver Line과 Red Line을 거쳐 기숙사로 향할 만큼의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피로에 떠밀리듯 미끄러져가 공항 앞에 줄지어 서 있던 택시들 중 하나를 탔다. 그렇게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고작 10마일도 되지 않는 그 여정은 나에게도 택시 기사에게도 몹시 좌절감을 줬다. 택시 기사는 나의 행선지가 어딘지 좀처럼 알아듣지를 못했다. 알버니, 얼버니, 울버니, 혹은 한글로는 적을 수 없는 무언가로 발음될 그 길 이름을 몇 번이고 말해보아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나는 결국 포기한 채 학교 이름을 댔고, 그다음에 이어진 학교 어디로 가고 싶은 거냐는 말에 대화가 다시 끊어졌다. 나는 불행하게도 보통명사로도 사용되는 기숙사 이름을 댔고, 택시 기사는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이러다가는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택시 기사는 구글 지도 앱을 실행시켜 행선지까지의 길을 직접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미국 전화번호도 없었고,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도 없었다. 택시 기사는 황당해하며 나에게 그의 스마트폰을 건넸고, 나는 붉어진 얼굴로 주소를 입력했다. 내비게이션이 작동했고, 우리는 서로와 대화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안도했다. 그렇게 나는 기숙사에 무사히 도착했고, 팁을 현금으로 꽉 채워 택시 기사에게 주었다. 택시 기사는 재빨리 떠났고, 나는 이 보잘것없는 모험 끝에서 허탈함만을 느낀 채 홀로 남았다. 나는 미국에서는 다시는 택시를 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유심카드를 사고 휴대폰 번호를 만든 뒤 나는 가장 먼저 우버를 설치했다. 그 뒤로는 차에 탈 때의 ‘Hello’부터 차에서 내릴 때의 ‘Thank you’까지 대화가 어떻게 진행 되든지에 관계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설명하지 않아도, 온몸의 긴장을 푼 채로 창밖만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 목적이 없는 말들은 차 안에서만 떠돌다가 문이 열리면 사라졌고, 나는 그 무의미함이 더없이 편하고 걱정 없이 좋았다.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남의 차를 타고 아무런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웃으며 말을 걸고 곧 잊어버릴 대화를 이어간다. 계좌에서 계좌로 신용카드를 경유해서 만질 수 없는 달러화가 넘어가고, 고맙다는 말이 숫자로 환산되어 팁이란 이름으로 그 뒤에 덧붙혀진다. 우버 기사가 어떤 사람이든 관계없이 돈을 원할 것이라는 점만은 믿을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낯선 사람의 차를 탈 수 있다. 그러기에 우버 기사 또한 낯선 사람을 차에 태울 수 있다.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버려 우리 모두의 감정을 옭아매는 이 세상에 경의를 표한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 서로와 호의 비슷한 것을 주고받는 일들이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낯선 사람이 나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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