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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13. 2023

이윤정과 캣벨

흥국생명의 캣벨과 도로공사의 캣벨은 무엇이 달랐나 

22~23 시즌 도로공사가 0% 확률을 뚫고 챔피언이 됐을 때, 챔프전의 주역을 고르라면 저는 이윤정과 캣벨을 선택하겠습니다. 챔피언결정전이라는 큰 경기를 처음 치르는 이윤정은 중고신인 답지 않게 침착한 세트로 좋은 공격을 리드했고 캣벨은 호응했습니다. 물론 챔프전 MVP로 캣벨이 뽑히긴 했지만, 캣벨의 역할은 MVP 보다 더 한 상이 있으면 그걸 주어도 모자랐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캣벨은 2022~23 시즌 흥국생명에 있을 땐 - 물론 그때 흥국생명은 참 힘든 시즌이었지만 - 그렇게 큰 파이팅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정규리그 마지막엔 지친 모습까지 보였고 토스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시즌이 계속되면서 표정은 어두웠고요. 정규 리그를 마치고 캣벨을 보내는 모습도 서운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흥국생명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몇 명 나가서 간단히 보낸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뭐, 흔한 팬이 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 수는 없으니까, 공항에 나온 모습만으로 짐작할 뿐이긴 하지만요. 


그렇게 캣벨과 한국은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23~24 시즌 트라이아웃에서 어느 팀도 캣벨을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엔 참 변수가 많은 법이지요. 도로공사가 뽑은 카타리나 요비치가 생각보다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자 도로공사는 여느 팀과 달리 주저하지 않고 다른 외국인 선수를 데려왔는데 바로 캣벨이었습니다. 튀르키에에서 2군으로 뛰고 있던 캣벨은 도로공사의 부름을 받자 곧바로 한국으로 향했지요. 도로공사는 카타리나와도 마무리를 잘한 것 같습니다. 


돌아온 캣벨은 그야말로 도로공사에게 있어 구원의 화신이었습니다. 도로공사가 3위를 굳히는데 큰 역할을 했으니까요. 흥국생명이 챔프전 상대라는 것도 어쩌면 캣벨을 다시 데려온 도로공사에게 이점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캣벨은 흥국생명에서 바로 전 시즌을 뛴 선수였으니까 흥국생명 선수들의 장단점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캣벨은 왜 흥국생명에선 그럭저럭이었는데 도로공사에서는 날았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이윤정의 인터뷰에서 찾고 싶습니다(저는 팬일 뿐 기자는 아니니까 여기서부터는 제 뇌피셜입니다). 정확히 어떤 경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윤정 선수가 MVP로 뽑힌 날이었는데 승리 소감을 묻는 질문에 '캣벨 언니가 잘 도와줘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보통 한국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를 지칭할 때는 어색하게 이름을 부르거나, 심지어 언론에서도 안 쓰는 용병이라고 부르거든요. 아무도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를 못 봤는데, 아마도 이윤정 선수는 캣벨이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언니라고 불렀던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세 번째 시즌이니까 알아들었을 겁니다).


호칭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선수가 어디에서 왔든지 한 팀으로 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김연경 선수도 처음 튀르키에 갔을 때는 너무나도 외로웠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에 오면 똑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다독이는 것도 선수들의 역할일 겁니다. 물론 우리나라 선수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외국인 선수가 적응을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어느 한쪽의 노력이 일방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외국인 선수를 한 팀으로 만드는 건 같은 팀 선수들이 하는 일입니다. 말이 안 통한다고 마음까지 안 통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이제 곧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이 있습니다. 기존에 뛰던 선수들도 있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겠지요. 아무리 좋은 선수가 와도 한 팀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캣벨 뿐입니까. 옐레나는 흥국생명에 와서 김연경을 만나 본 실력을 드러냈거나 엄청 성장했습니다. 반대로 쉼 없이 공격을 퍼붓던 야스민은 허리 부상으로 중도 탈락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 정도면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윤정 선수는 그 선한 마음과 태도로 반드시 큰 선수가 될 겁니다. (외국인 선수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윤정 칭찬하기라니!) 24~25 시즌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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