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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17. 2023

황제는 남았는데 공명은 어디에

김연경 흥국생명 FA 계약을 축하합니다. 

김연경 선수가 흥국생명과 FA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말하기 쉽지만 저는 잔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아본단자 감독이 오셨는데 그분을 뿌리치고 떠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여자배구 팬들이 반드시 들고일어나야 하는 이슈지요. 샐러리캡 때문입니다. 


여자배구 선수의 보수는 1/12로 나눠서 받는 연봉과 옵션으로 구성됩니다. 연봉을 1/12로 나눠 받는 건 일반 직장인과 큰 차이가 없겠고요, 나머지는 옵션입니다. 여기에는 승리수당, 출전수당, 훈련수당, 성과수당 등 배구활동 관련 보상과 계약금, 부동산, 차량제공, 모기업 및 계열사 광고 등 배구활동 외적인 모든 금전적인 보상(한국배구연명 규정 3절 72조 3항)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왜 연봉과 옵션이 나눠졌냐 하면, 연봉에 제한을 두기 때문입니다. 샐러리캡이라고도 합니다. 


선수들한테 연봉을 많이 주느라 망한 구단이 있다,라는 데서 시작한 샐러리캡은 겉으로는 돈 많은 구단이 선수를 싹 쓸어가는 걸 막겠다,라는 핑계가 있지만 누가 봐도 구단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구단이 있어야 선수도 있는 거라서 연봉을 무한대로 주고 싶지만(!) 주다가 망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이 제도 자체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여자배구 팬들이 분노해야 할 이유는 남녀부의 샐러리캡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23~24년 여자부 샐러리캡은 각 팀당 연봉 19억, 옵션 6억, 남자부에는 있지도 않은 승리수당 3억)을 포함해 총 28억입니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이 중에서 한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최대 보수는 연봉 4억 7,500만 원, 옵션 3억 원으로 총 7억 7천500만 원입니다. 월드 클래스 김연경이 이렇게 받는다는 거예요. 뭐, 그럴 수 있죠. 우리나라는 다른 스포츠보다 배구 인기가 덜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남자부를 보면 눈이 돌아갑니다. 국제 대회에 기본으로 초청도 못 받는 남자배구 선수들은 10억을 넘게 받아요. 왜? 왜?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아주 옛날 배구 기사를 보면 아주 당당하게 이렇게 써 놓은 기사가 있어요. 2018년에 스포츠 동아에 샐러리캡은 젠더 문제 아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여자배구가 샐러리캡을 안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못 올리는 것이다. 흥행이 안돼서 그렇다, 그리고 구단들이 생각보다 돈을 써야 하는 곳이 많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남녀차별 프레임은 한국배구에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요, 젠더의 추가 기울어진 상태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제 어렵사리 젠더의 추가 기울임을 줄여가고 있는데 여전히 샐리리캡의 차이가 큰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코보 홈페이지부터 여자부에 대한 차별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디폴트 메뉴는 전부 남자부 우선이에요. 여자부 기록을 보려면 남자부를 클릭한 후에 여자부를 봐야 합니다. 배구 순위를 보여주는 차트도 남자부 우선이고 여자부는 나중이에요. 흥행은 이미 여자부가 입증했고 그 덕에 남자부가 따라오고 있으면 누가 봐도 이 순서를 바꾸는 것이 맞습니다. 


당장 여자부 샐러리캡을 남자부 샐러리캡과 맞추어야 합니다. 홈페이지도 여자부가 먼저 보이게 해야죠. 이유는 그동안 주장해 온 것들이 있잖습니까, 흥행이라고. 여자부가 흥행을 입증했으면 같은 대우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배구를 이롭게 하는 확실한 길입니다. 


자, 다시 맨 처음 얘기로 돌아가면, 김연경 선수가 갈 수 있는 팀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김연경 선수는 우승하는 팀을 희망한다고 했으나 4위권 이하 팀을 고려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대건설은 샐러리캡에 걸려 스스로 7억에서 6억으로 연봉을 내린 양효진 선수가 있습니다. 효진 선수가 김연경 선수에게 꽃다발 주는 장면을 보면서 구애를 한다고 했지만 안 그래도 다른 선수들 연봉이 높은 현대건설이 김연경을 데려간다면 그 밑에 몇 명의 선수는 팀을 떠나야 할 겁니다. 


도로공사는 박정아, 배유나, 정대영을 잡기에도 급한데 김연경을 욕심낼 이유가 없어요. 인삼공사라면 한 번 해 봄 직도 한데 물 밑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소영이라는 6억 5천 선수가 있어서 역시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흥국생명 잔류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샐러리캡에는 더 이상 주지 말라는 규정도 있지만 최소 50%는 줘야 한다는 규정도 있어요. (이것도 70%였는데 50%로 내렸다는) 그러니 고액연봉 선수가 많지 않은 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유능한 외부 선수를 데려와야 하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제일 급한 포지션은 바로 세터일 겁니다. 하지만 FA 시장에 나와 있는 세터는 없죠. 그리고 다른 팀에서 데려올 만한 세터도 딱히 고르기 어려울 거에요. 지난 시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던 박혜진이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주느냐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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