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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21. 2023

고양이의 언어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녀석도 나처럼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우주는 말수가 적다. 잘 울지도 않고, 떼쓰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아예 소리를 내지 않는 건 아니다. 가끔 혼자서 이런저런 소리를 내는데 글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게다가 고양이는 소리뿐 아니라 몸짓으로도 의사 표현을 한다지 않는가.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빤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싶으면 고개를 돌리고 자기 길을 간다. 가끔 서서 돌아본다. 이건 따라오라는 말이다. (이걸 뭐 굳이 설명을 하고 있는 나도 참…)


내가 우주에게 익숙해졌는지, 우주가 나를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럴 때 고양이 집사들은 고양이가 사람을 파악한 거라고 말한다 ㅋ)  우리가 서로 통하는 말이 세 개 있다. 첫째는 “미야옹”이다. 어딘가 숨어 있다가 내 옆에서, 대부분은 내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밑에서, 미야옹 소리가 들린다. 이건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말이다. 요즘은 ‘나를 책상이나 의자 위에 올려주라.’는 게 대부분이지만. 의자에 올려주면 내가 앉을 데가 없어 다른 의자를 가지러 가는데 그럴 때 한 번 더 미야옹이 울린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옆에 있으라는 뜻이다.

책상 위로 올라서다 화면을 보고 미야옹하면 지금 화면이 마음에 드니 다른 걸로 바꾸지 말라는 뜻이고 (아니 무슨 고양이가 유튜브도 아니고 원고 쓰는 화면을 보냐고) 넘어뜨릴까 봐 컵을 치울 때 미야옹 거리면 그 컵에서 나도 물 좀 먹자는 얘기다. 다 둘러보고 할 게 없으면 나를 보고 미야옹, 이건 내려 달라는 얘기고(아직 책상에서 뛰어내리지는 못한다) NUGU 스피커 앞에서 미야옹 거리면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달라는 거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30초쯤 앉아 있다가 다른 데로 간다. 

사냥 놀이를 하면서 완전 신났다 싶으면 "븝븝븝" 소리를 내는데, 이걸 자기 호흡에 맞춰서 내다보니 약간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기분 좋게 장난감을 낚아채면 븝븝븝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걸 녹음하기가 영 어렵다. 장난감 흔들어 주다가 내가 지치기도 하고 이것도 타이밍이라고 한 번 리듬이 깨지면 언제 했냐는 듯이 자기 방 중 하나로 들어가 버린다. 


마지막 하나는 그르르릉이다. 누구나 다 좋아하는 고양이 골골송이다. 아기 고양이라서 미야옹이나 븝븝븝은 꽤 애기 소리 같은데 이것만은 좀 다르다. 평소에는 안 골지만 너무 피곤한 사람이 그르릉 거리는 코골이 같다. 음색은 생각보다 중저음이고 쓰다듬기도 전에 먼저 소리를 내서 얼른 빗질을 하거나 터치를 해달라고 그런다. 빗질이나 쓰다듬어주면 그루밍하면서 그르르릉 소리를 낸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터치를 그만둘 수 없다. 그르릉 거린다는 말은 아직 안 잔다는 말이고 그 말은 멈출 때까지 하던 걸 계속하라는 뜻이다. 


아, 그리고 조금 전에 깨달은 거 하나. 미야오오옹, 이렇게 길게 빼는 소리가 있다. 처음엔 뭘 해달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꺼지란 말이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건드리지 말아 줘.’ 설마 사춘기가 벌써 온 건 아니길 빈다.


@woojoo.kitten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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