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나의 비밀이 아찔하게 밝혀질 때
단 한 번의 게임으로 당신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진다면? 이런 아찔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게임의 룰은 단 하나다. 저녁 식사 시간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등을 모두 공유하는 것. 당신이라면 이 게임에 참여하겠는가? 연극 '완벽한 타인'은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한 이 게임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 숨겨왔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난 이후 게임의 참여자들이 맞는 결말을 살짝 알려주자면, 아찔하다.
아마도 이런 독특한 게임의 내용이 익숙하다면, 맞다. 지난 2018년 개봉해 500만 관객을 돌파한 동명 영화와 같은 스토리다. 원래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 감독 파울로 제노베제의 영화 '완벽한 타인(Perfetti Sconosciuti)'이 원작으로, 이탈리아 영화계 최고 흥행작이었음은 물론 ‘다비드 디 도나텔로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개봉 3년 만에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8개국에서 리메이크되어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른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지난 5월 18일 개막한 연극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버전의 영화를 원작으로, 무대화가 된 작품이다.
'완벽한 타인'은 에바와 로코 부부가 절친한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비앙카와 코지모 부부, 까를로타와 렐레 부부, 그리고 페페가 도착해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는다. 저녁 식사 중 최근 남편 핸드폰에 온 문자로 외도가 알려져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에바는 게임 하나를 제안한다. 식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저녁 시간 동안 오는 전화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공유하는 게임. 친구들은 망설이지만 결국 게임에 참여하게 되고, 불행하게도 그들의 내밀한 비밀들이 계속해서 폭로된다. 마침내 화기애애하던 식사 자리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스크린에서 무대로 옮겨온 이야기는 연극만의 매력을 한껏 강조했다. 7명의 주인공이 자신의 핸드폰을 공유하는 단순한 게임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외부적인 삶과 개인만의 비밀스러운 삶이 공존하는 그 자체를 주목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비밀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조금씩 심리는 흔들리고 이것은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다수의 배우가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산만함을 느낄 수 없이 쫀쫀하게 펼쳐지는 긴장감은 작품의 묘미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웃플 수밖에’ 없는 상황들, 그리고 비밀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이 가능한 대사들은 통통 튀는 유쾌함을 펼쳐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주인공들의 ‘밀고 당기’는 대사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뭐야? 이거 최후의 만찬이야?”라는 무심한 하나의 대사로, 무대 위 일자로 뻗은 테이블을 설명하는 센스는 객석과 작품의 사이를 가까워지게 만드는 계기를 만든 것이 그 예다. 핸드폰의 전화, 메시지 등은 재치 넘치는 영상을 사용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웃음 포인트를 건드리지 않지만, 소소하게 벌어지는 상황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 사이의 티키타카는 오히려 큰 웃음을 탄생시킨다. 목소리로 깜짝 등장하는 배우들의 정체를 예상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집 전체를 무대 위에 적절하게 배분해 옮겨놓은 것도 꽤 볼만하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음식을 담아 나눠 먹는 설정도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완벽한 타인'은 특별한 주인공도 없고, 장면을 특정하게 나누어 말하기도 어렵다. 연달아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쉴 틈 없이 진행되고, 배우들의 대사 또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심리적인 긴장감이 더해지는 동시에 연극적인 매력이 한껏 풍부해진다. 그렇다고 작품이 마냥 웃기는 코미디 장르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무대 위로 옮겼고, 갓 성인이 된 딸에게 이성적이고 따스한 조언을 건네주는 ‘판타지스러운’ 아버지의 모습 등으로 현실의 생동감을 더해 매력적인 ‘블랙 코미디’로 한층 더 매력을 풍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 결말은 모호함을 자아내며 관객에게 고민거리를 남긴다.
대학로 연극계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은 연출가 민준호를 필두로, 작가 오인하가 각색을 맡았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신뢰를 받아온 배우들은 물론 브라운관과 무대에서 활동하던 새로운 얼굴들의 합은 신선하다. 로코의 부인이자 정신과 의사 에바 역에 유연, 장희진이, 에바의 남편이자 성형외과 의사 로코 역에 양경원, 박은석이 캐스팅됐다. 렐레의 부인이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업주부 까를로타로 유지연, 정연이, 까를로타의 남편이자 변호사인 렐레로 김재범과 박정복이 무대에 오른다. 코지모의 아내이자 수의사 비앙카 역에 박소진과 임세미가, 비앙카의 남편 코지모 역에 이시언과 성두섭이 출연한다. 이혼한 독신남 페페 역은 김설진, 임철수가, 에바와 로코 부부의 딸 소피아 역은 김채윤이 맡는다. 오는 8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