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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라 Jun 14. 2021

연극 '안녕, 여름'

우리가 상실을 치유하는 방법

연극 '안녕, 여름'의 한 장면 (제공=알앤디웍스)


연극 '안녕, 여름'은 짙은 색의 캐릭터들이 모두 모여 앙상블을 이룬다. 지난 2016년 한국에서 처음 공연한 이 연극은 앞서 2002년 일본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희곡, 소설, 만화,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로 재창작되어 사랑을 받았다. 5년 만에 돌아온 이번 재연에는 초연에 이어 오루피나 연출가와 최종윤 작곡가가 다시 한번 힘을 합쳤다.


'안녕, 여름'의 주인공은 설렘보다는 편안함이 더 익숙한 결혼 6년 차 태민과 여름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변에는 조지, 동욱, 란이 있다. 작품은 뚜렷하고 명백한 캐릭터를 통해 후회 없는 삶과 사랑이란 무엇인지,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눈 사랑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의 시작은 ‘사랑이 사라졌을 때’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무언가의 ‘결핍’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결핍’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고백하며 관계를 맺어간다. 동그라미가 아주 살짝 흠이 패였다 해서 동그라미가 아니라곤 할 수 없다. 작품 속 인물은 ‘결핍’으로 만들어진 ‘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작품은 평범한 한 부부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유명한 사진작가였지만 한동안 사진을 찍지 않고 있는 슬럼프의 남편 태민은 남편에 대한 애정만큼은 한결같은 매력적인 아내 여름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태민은 여름의 행동과 잔소리가 귀찮게 느껴지지만, 여름은 아이를 갖자며 프러포즈를 받았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후 태민의 집으로 출근한 그의 조수이자 사진작가 지망생은 동욱은 얼떨결에 배우 지망생 란의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부부, 태민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여름을 향한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는다.


'안녕, 여름'의 초반 태민과 여름의 행동은 오묘하게 이질적이다. 서로에게 충분히 익숙해진 ‘6년 차 부부’라는 설정을 이해 한다쳐도, 그들을 ‘평범한 부부’라 말하기엔 어쩐지 망설여진다. 그때마다 두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가벼운 대사는 이런 어색한 관계의 힌트다. 게다가 부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마치 코미디극의 한 콩트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어색함과 웃음이 가득한 상황은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을 강조하는 힌트로 작용한다. 우리는 상실을 겪는다. '안녕, 여름' 속 인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상실의 아픔을 인정하고 치유하는 방법을 드러낸다. 저마다의 아픔, 슬픔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치유하고 위로받는다는 걸 말한다. 작품은 말한다. 완벽히 치유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세상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용기 자체가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안녕, 여름'이 꽤 깊은 인상을 주는 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죽음’과 ‘이별’로 발생한 ‘슬픔’과 ‘상실’이란 진부한 소재를 담백하면서도 섬세하고 솔직하게 비춰냈기 때문이다.


연극 '안녕, 여름'의 한 장면 (제공=알앤디웍스)


특히 작품 속 관계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조지’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오루피나 연출은 “'안녕, 여름'은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작품을 통해 그 결핍 있는 사람들을 ‘조지’라는 역으로 묶어보고 싶었다”며 일본 원작에서 평면적으로 표현된 조지를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그려냈다. 그는 “재연에서 작품에서 나이와 성별과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결핍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걸 묶어줄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조지였다”면서 조지를 중심으로 결핍의 관계를 엮어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지 역의 남명렬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채우는 법을 따스하게 알려주는 ‘인생 선배’이자 듬직한 친구로서 무대 위에서 밝게 빛난다.


'안녕, 여름'의 장점이자 단점은 ‘19금’을 넘나드는 웃음 포인트다. 포스터나 예매 페이지 속 잔잔한 분위기를 예상했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초반 관객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키포인트로 작용하는 위트 넘치는 대사들은 관람 연령에 대한 궁금증을 끌어온다. (참고로 작품은 17세 이상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로, 입장 연령 미만은 객석 입장이 불가하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장면과 분위기는 후반에 펼쳐질 반전을 크게 만드는 장치라고 해도,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배우 지망생인 란이 공짜로 프로필 사진을 찍어 달라며 잠자리를 제안하고, 전남친의 아이를 임신 했다는 사실을 속이고 현재의 남자친구에게 돈을 요구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눈살을 찌푸려진다. 원작의 대사나 단어를 수정하고 각색했다고는 하지만,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장면은 작품 곳곳에 존재한다.


유명 사진작가로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무심한 남편 태민 역에 정원조, 송용진, 장지후가 출연한다. 덤벙거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을 향한 애정은 한결같은 여름 역에는 박혜나, 이예은이 캐스팅됐다.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조지 역에는 남명렬, 조남희가 무대에 오른다. 연애에 서툰 순수한 사진작가 지망생 동욱 역에는 박준휘, 조훈, 반정모가, 당찬 성격의 배우 지망생 란 역에는 이지수, 박가은이 열연한다. 오는 6월 20일까지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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