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남자의 실사판?!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2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옵니다. 뮤지컬은 프랑스의 왕비였으나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과 사회 부조리에 대항해 혁명에 앞장선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합니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협업으로 크게 사랑받은 작품입니다.
<레 미제라블> <아이다> <벤허> <프랑켄슈타인> <위키드> <지킬 앤 하이드> <안나 카레니나> 등 대형 뮤지컬의 주역을 맡아 강인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뮤지컬 배우 민우혁. 이번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페르젠 백작 역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그동안 군인과 백작 캐릭터를 도맡아온 그이기에 페르젠 백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은 눈에 그려질 정도인데요. 그런 민우혁을 KOPIS에서 만났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그리드 아르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페르젠 백작의 이야기도 꽤 비중 있게 다룹니다. 페르젠 백작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서술하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는데요. 작품은 페르젠 백작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식을 접하고 그녀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1774년 7월 30일 한 오페라의 가면무도회, 18살의 페르젠은 벨벳 가면으로 정체를 숨긴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몇 년 후 파리의 무도회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겉잡을 수 없는 운명의 회오리 속으로 걸어가죠.
페르젠으로 출연하는 민우혁은 대화 내내 지난 2014년 초연 이후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할 정도로 사랑받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명성을 꾸준히 접했다면서 작품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연을 맺게 된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제작 환경 또한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입니다. 무엇보다 민우혁은 이번 <마리 앙투아네트> 팀을 ‘작품을 위해 똘똘 뭉친 드림팀’이라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좋은 배우들과 좋은 크리에이티브 팀이 모인 작품이라 이미 연습 과정부터 신뢰가 가고, 연습이 늘 재미있어요. 이전 시즌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이 모여 디테일한 부분을 채워가거나 스토리와 캐릭터를 이해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로버트 요한슨 연출님과 깊은 대화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에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혁명을 이끈 마그리드 아르노의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진실과 정의에 대한 의미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실존 인물과 사건 그리고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들이 적절하게 섞인 ‘팩션(Faction) 뮤지컬’이죠. 민우혁은 페르젠 백작에 몰입하며 ‘정의’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데요. “제가 답을 내린 ‘정의’는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신념이에요.” 깊은 생각 끝에 명료한 답을 내어놓은 그는 인터뷰 내내 신념과 진정성이라는 진지한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특히 페르젠 백작을 위해 많은 땀과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고민하는 부분 역시 진정성이라고 강조했죠. 자칫하면 관객들이 페르젠 백작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잠깐 사랑했던 남자 혹은 매력적인 백작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페르젠 백작의 사랑은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워요. 그는 금지된 사랑을 깨닫고 힘겹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나거든요. 그런데 프랑스 혁명 소식을 들은 후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돌아오죠. 그렇게 어렵게 떠났는데도 말이에요. 돌아온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현실을 보라’고 조언하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줘요. 저는 이런 페르젠 백작을 단순한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고민하고 지켜온 진정성과 진심을 담아 그의 고민, 고뇌와 사랑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 표현해내고 싶어요.”
프랑스 혁명 당시 군중들에게 잡혀 감옥에 갇힌 그녀는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페르젠 백작은 그런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보고도 ‘이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당신의 이런 모습조차도 사랑해’라며 그녀의 마음을 울립니다. 이 장면을 연습하면서 민우혁은 페르젠 백작의 멋진 사랑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페르젠 백작을 설명하는 또 다른 표현은 ‘모든 여성으로부터 선망 받는 귀족’인데요. 실제로 훈훈한 외모와 완벽한 스펙을 지닌 페르젠 백작을 연기하는 그의 심경은 어떨까요? “당시 프랑스에서는 페르젠 백작을 ‘걸어 다니는 그림’이라고도 했대요. 그런데 저는 단지 외모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젠 백작을 사랑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연출님께서는 페르젠 백작은 멋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지만요. (웃음) 페르젠 백작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진심으로 배려해주고 걱정하고 아껴줘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페르젠 백작의 진심을 깨닫고 그의 사랑에 의지하고 기댈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내면에 매료된 거죠.”
배우 민우혁은 유독 ‘프랑스 혁명’과 관계가 깊습니다. 그가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레 미제라블>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가는 혁명가 앙졸라 역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6년이 흐른 지금, 민우혁은 혁명가들이 타도하려 했던 귀족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혹시나 <레 미제라블>에 참여했던 과거와 비교해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마음이 달라졌을까요? “그럼요, 달라졌어요. 앙졸라를 연기할 땐 그의 신념과 정의가 100% 옳다고 확신했어요.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무조건 틀렸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의 페르젠 백작을 통해서 ‘정의는 무엇일까?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되뇌고 있어요. 페르젠 백작은 사랑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혁명을 이끄는 마그리드 아르노,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니까요. 이들의 중간 지점에서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인터뷰하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 어쩌면 앙졸라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신념과 정의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정답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쯤에서 또 궁금해졌습니다. 사랑과 정의 사이에서 꼭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민우혁은 무엇을 원할까요? “사랑이요. 제 삶의 모토가 ‘지금 당장 행복하면 그만’이거든요. 제가 배우로 활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대에 오르면 행복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살면서 여러 감정을 느끼고 또 그러면서 얻는 행복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무대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민우혁은 프랑스 혁명 틈바구니 속에 피어안 사랑 이야기를 통해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진정한 정의와 진실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는 작품이라고도 덧붙이면서요.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민우혁의 기대감을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뜻하지 않게 멋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요. ‘걸어 다니는 그림’이라는 별명처럼 멋있는 겉모습을 넘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페르젠 백작의 사랑을 진정성 있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곁에도 순수한 사랑을 주는 분들도 계실 거라 믿습니다. 주변을 잘 살펴서 그런 사랑을 마음껏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공연예술통합전산망 KOPIS 블로그에 작성한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