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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라 Jul 25. 2021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사랑이라는 해피엔딩을 위하여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공연 사진 (제공=CJ ENM)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공연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렇다.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미 국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은 작품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을 무대에서 선보인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이들은 영국의 락밴드 블러의 멤버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Everyday Robots’에서 모티브를 얻어 ‘어쩌면 해피엔딩’을 탄생시켰다고.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2016년 정식 공연을 올린 ‘어쩌면 해피엔딩’은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6개 부문, 제6회 예그린어워드 4개 부문을 수상했고, 꾸준히 여러 시즌 공연되어 왔다.


주인공은 ‘헬퍼봇’이라고 불리는 수명이 오래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다. 버려진 로봇들이 모여있는 아파트에서 클레어는 고장 난 충전기를 빌리기 위해 올리버의 방문을 두드린다. 모든 일상을 계획대로 살아가는 올리버는 갑작스러운 클레어의 방문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지만, 결국 그의 충전기를 수리해준다. 그렇게 두 로봇은 서서히 서로의 일상에 물들어 간다. 올리버는 옛 주인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또 클레어는 꿈에 그리던 반딧불을 보기 위해 함께 제주로도 떠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특별한 배경, 미래의 로봇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설정을 뛰어넘어 무대 위에 짙게 나오는 매력은 바로 아날로그 감성이다. 올리버는 첫 장면부터 재즈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는 로봇으로 등장한다. 매달 본인을 스스로 수리하기 위한 부품과 함께 도착하는 <월간 재즈>를 기다리는 올리버의 모습은 택배를 기다리는 우리와 상당히 닮아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전부 담아낸 재즈 음악과 버려진 로봇의 조화는 예상외로 잘 어울린다. 게다가 옛 주인 제임스와 함께 재즈 음악을 듣던 올리버, 단순히 주인과 로봇 관계를 넘어서 ‘친구’가 된 두 사람의 사연에서 우리가 보통 예상하던 SF의 세상은 흐릿해진다. 심장이 없는 로봇들의 사랑을 지켜 보는 인간 관객들은, 마치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인 것만 같은 동질감마저 느낀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공연 사진 (제공=CJ ENM)


무엇보다 재즈와 클래식이 한데 어우러져 녹아있는 작품의 음악은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하는 가장 큰 힘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드럼으로 구성된 악기는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로봇들의 다양한 감정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탄생시켰다. 아기자기하지만 서정적인 노랫말 또한 듣기에 편안하면서도 사랑스럽다. 멜로디와 스토리가 잘 어우러져 작품의 메시지를 극대화한 것도 좋은 인상을 건넨다. 여기에 나뭇결이나 파스텔톤을 사용한 다양한 소품, LP나 종이 잡지, 화분, 반딧불 등의 소재는 미래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돌아간 듯한 은은한 매력을 풍긴다.


올리버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 클레어는 말한다. “약속해, 날 사랑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결국 약속을 어긴 채 사랑에 빠져버린 올리버와 클레어는 인간보다 더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품이 해피엔딩인지, 혹은 새드엔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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