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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라 Mar 19. 2022

뮤지컬 '헤드윅'

작품과 하나가 된 배우가 전하는 위로

뮤지컬 '헤드윅'의 공연사진 제공=쇼노트


우리가 말하는 공연은 이야기, 음악, 의상, 조명, 소품, 무대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됐다. 심지어는 그날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까지도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도 한다. 이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요소와 변수가 집약된 뮤지컬 무대를 논할 때, 특정한 배우를 탁 꼬집어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헤드윅'을 말할 때, 특히나 헤드윅 역의 배우는 필수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이 작품은 같은 역에 캐스팅된 배우들이 동일한 스토리와 노래를 부르지만, 배우 개인적인 특성이 짙게 더해져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완성한다. 때문에 '헤드윅'이라는 작품명보다 매 시즌 배우들의 별명을 따 부르는 경우도 많다.


그중 조승우는 '헤드윅'을 말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배우다. 일명 '조드윅' 혹은 '조언니'라고 불리는 그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지난 2005년 초연부터 2016년까지 다섯 번의 시즌을 함께한 조승우는 5년 만의 귀환 소식을 전하며 대중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특히 그는 헤드윅으로 캐스팅된 다른 배우들보다 훨씬 긴 공연 시간을 자랑하는데, 평균 2시간 45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를 쓴 채 객석의 문을 열고 도도하게 등장하는 모습부터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다가도, 마치 불꽃처럼 노래에 감정을 쏟아내고, 적막 속의 관객들과 눈빛으로 교감을 건네며, 함께 무대 위에 있는 이츠학과 앵그리인치 밴드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까지. 조승우는 '밀당의 고수'처럼, 그 긴 시간 중 한순간도 헤드윅이 인생에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도록 만든다. 게다가 철저한 방역수칙으로 인해 관객과의 소통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노련함으로 혼자 자신과 관객들의 대화와 공감을 이끌어나간다. 대답 없는 고요함 속에서도 수없이 객석을 향해 던지는 질문과 자답은 '조언니'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키는 요소가 됐다.


뮤지컬 '헤드윅'의 공연사진 제공=쇼노트


특히 '헤드윅'은 큰 줄기의 스토리에 배우 개인적인 요소들이 함께 융합되어 완성되는 작품이다. 조승우는 무대 위에서 공연장에 늦게 도착한 관객을 향해 "왜 늦었어! 빨리 다녀야지 왜 늦었냐구!"라고 말하거나 의상에 눈가를 맞았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전혀 밉지 않다. 작품 곳곳에서는 환경보호나 동물보호 등처럼 그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묻어져 나오기도 한다. 억압된 시대에서 우리에게 계속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헤드윅, 그 자체로서 던지는 말처럼 들린다. 또한 그런 그의 자유롭고 줏대 있는 대사들은 관객이 '조언니'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아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헤드윅이 저 멀리 미국의 한 바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기도 할 정도다. 무엇보다 자신의 굴곡진 삶을 조용하게 읊어주는 '조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캐릭터와 배우 자신의 경계가 잊혀진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2005년 4월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 '헤드윅'은 지금까지 12번의 시즌을 거치며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 최장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제작사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2,300회의 공연을 거쳐 간 누적 관객 수는 63만 명이다. 동독 출신의 트렌스젠더 록 가수 헤드윅이 연인 토미에게 배신당하고, 그동안 걸어왔던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한국 프로덕션은 출연 배우마다 각기 다른 의상과 헤어 디자인으로, 개별성을 강조했다. 지난 2016년 뉴욕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브로드웨이 진출과 함께, 국내에서도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웠다.


지금까지 우리의 곁으로 온 다양한 '헤드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작품의 인기를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파격적인 트렌스젠더 쇼 혹은 록 장르의 음악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뮤지컬 등등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수많은 '헤드윅'이 이토록 오랫동안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그 많은 헤드윅이 각자의 방식으로 건넨 '위로'가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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