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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라 Apr 23. 2022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전동석이 풀어낸 비극적인 실험의 마침표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왔던 성악도는 이제 대형 뮤지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배우 전동석의 이야기다. 지난 2009년 데뷔작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를 시작으로, 이미 10년을 훌쩍 넘기며 무대를 지켜온 그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모차르트!', '햄릿', '엘리자벳', '해를 품은 달', '두 도시 이야기', '팬텀', '더 라스트 키스'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남성 뮤지컬 배우라면 출연하고 싶은 '꿈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류정한을 비롯해 조승우, 홍광호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고, 그만큼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스테디셀러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 작품이기 때문이다. 벌써 아홉 시즌에 돌입한 '지킬앤하이드'는 그 인기를 증명하듯 약 7개월의 장기공연을 확정했다. 앞서 류정한, 홍광호, 신성록이 먼저 출연한 이번 시즌은 지난달 26일부터 2차 라인업인 박은태, 카이, 전동석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공연 중이다.


지난 2018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지킬앤하이드'에 합류한 전동석은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과 악'으로 분리되는 헨리 지킬과 에드워드 하이드의 내면 대립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은 두 캐릭터의 확연한 대비가 묘미로 꼽히는데, 전동석은 작품의 본질을 강조해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지켜보는 재미를 전한다.


전동석의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이 절대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 동시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건강하게 돌릴 수 있다는 굳건한 신념을 지녔다. 그의 신념은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자신을 실험의 대상자로 선택하게 한 가장 큰 이유다. 이는 작품의 하이라이트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에서 잘 드러나는데, 풍부한 성량과 안정된 음색으로 공연장을 채우는 그는 앞으로 펼쳐질 실험과 결과를 향한 걱정보다는 희망과 집념이 담아냈다. 지킬 박사가 신념에 몰입하고 주위 사람에게 친절한 뇌섹남의 면모를 드러낸다면, 하이드는 단연 거칠고 야성적인 내면의 폭발성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노래 한 곡에 지킬과 하이드를 26번 오가는 ‘대결(The Confrontation)’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조명에 맞춰 목소리와 얼굴을 변신시키며 반전매력을 노련하게 전한다.


이번 시즌 전동석의 ‘지킬앤하이드’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지킬 박사가 루시를 처음 만나는 ‘뜨겁게 온 몸이 달았어(Bring on the Men)’ 장면이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던 지킬 박사는 사창가의 한 클럽에서 춤을 추는 루시를 향해 눈을 떼지 못한다. 그가 막 엠마와의 약혼식을 끝내고 친구들과 방문한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을 살짝 잊는다면, “오직 친구”일 뿐이란 다정한 철벽과 함께 연락처를 건네는 지킬 박사와 이를 소중하게 품는 루시의 관계는 꽤나 로맨틱하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그러나 지킬 박사와 루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역시 하이드의 등장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사회악’을 잔인하게 처단하며 객석에 통쾌함을 건네던 하이드는 도시를 떠나려는 루시를 만나자마자 폭발적인 질투와 함께 잔혹한 선택을 건넨다. 마치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모두가 가질 수 없다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처럼, 하이드는 자신의 은밀한 곳에서 억눌려져 있을 지킬 박사의 진심을 짓밟아 버린다. 앞서 다정했던 지킬 박사와 루시의 만남을 되짚어보면 두 사람은 더욱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지킬 박사가 사라졌다고 믿은 하이드는 그가 가장 행복한 날 다시 등장하니까. 결국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며, 더 나은 사회와 삶을 향한 지킬 박사의 위험한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리며 씁쓸함을 전한다.


탄탄한 실력을 지닌 배우들의 매력을 한껏 살리는 요소는 단연코 음악이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에서 탄생한 작품은 ‘나도 몰랐던 나(Dangerous Game)’, ‘대결(The Confrontation)’, ‘한때는 꿈에(Once upon a dream)’, ‘시작해 새 인생(A New Life)’ 등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캐릭터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이번 시즌에는 OST 앨범도 발매되어 공연의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지킬앤하이드’는 전동석 외에도 박은태, 카이, 선민, 정유지, 해나, 조정은, 최수진, 이지혜 등이 출연한다. 오는 5월 8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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