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보라 Apr 23. 2022

뮤지컬 '엑스칼리버'

검을 뽑은 자의 고뇌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EMK뮤지컬컴퍼니가 세 번째로 선보인 창작 뮤지컬이다. 제작사 측에 따르면 작품은 지금까지 평균 객석 점유율 90%, 누적 24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공연은 지난 21년 재연의 앙코르 공연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창작 뮤지컬이지만 우리에게 낯선 영국의 신화를 내세웠다. 색슨존의 침략에 맞서 혼란스러운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아더왕의 이야기다. 전세계 뮤지컬 프로듀서의 꿈인 웨스트엔드 진출이 은밀하게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뮤지컬 '엑스칼리버'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이미 흥행을 입증한 작품은 재연을 앞두고 예상외의 행보를 선택했다. 이미 대중적인 성공을 보여준 작품에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이를 위해 한국인의 마음을 명확하게 아는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재연에 앞서 5개의 신곡을 더했다.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초연보다 훨씬 풍부하게 더해진 아더의 서사는 보는 이들이 공감대를 높였다. 전설로 전해 내려온 바위섬에 꽂힌 칼을 뽑은 그 대단한 자가 되어버린 아더는 자신이 정말 '왕'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하고 고뇌한다. 여타의 비슷한 전설에서 만날 수 있는 '고귀한 핏줄'이라는 정통성을 내세워 왕의 자리에 앉는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처럼 실수하고 뉘우치고 또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을 무사히 넘기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어쩌면 여전히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자신의 본분을 잊은 아더에게 던져지는 날카로운 시선도, 이를 극복한 그의 모습도 신화 속 주인공이라기엔 너무나 인간적이다. 여기에 재연부터 추가된 곡 또한 아더의 심리를 투영하는 곡이 중심이 되어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국내 관객에게 낯설게만 느껴졌던 고대 영국의 신화는 인간적인 한 영웅의 성장사로 다가오게 됐다.


아더 외에 다른 캐릭터들도 재연을 거치며 훨씬 입체적으로 수정됐다. 기네비어가 활을 사용하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강렬하고 자립심이 강한 여성으로 그려진 것도 반갑다. 특히 엔딩에 다다라 한 나라의 왕비이자 아내의 자리가 아닌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여전사로 남는 기네비어의 모습은 자신의 길을 확고히 나아가는 통쾌함과 응원의 손길을 건네게 만든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더와 기네비어에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캐릭터들에게 몇몇 의문점들이 쏟아진다. 아더와 이복남매인 모르가나와 마법사 멀린의 숨겨진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엑스칼리버'에서 큰 인상을 남기는 것은 단연코 무대다. 거대한 세종문화회관의 무대를 감싸고 있는 고목은 그 크기만큼 묵직한 무게감을 건네며, 오래된 이야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설정으로서 존재한다. 강렬한 빛이 고목을 감싸 안는 순간,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신비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특별함을 전한다. 초연 당시 하나였던 바위산은 이제 다섯 개의 바위들로 나뉘어 다양한 형태의 조합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덕분에 전설적인 바위산의 웅장함을 지키면서도 여러 공간을 만들며 다채로움을 더했다.


뮤지컬 '엑스칼리버'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무엇보다 섬세하게 구현된 영상은 큰 무대를 꽉 채우며 공간감을 더 넓히는 중요 요소로 작용한다. 마법이 공존하는 시대를 구현해낸 것은 놀라운 기술의 적용이다. 광섬유와 레이저를 활용하며 신비로운 오로라를 무대 위쪽에 탄생시켰고,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던 판타지 장르가 무대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 큰 요소가 됐다. 야만인의 모습을 지닌 잭슨족의 등장은 붉은 조명과 안무를 통해 인상을 남긴다. 특히 동물적이고 거친 움직임은 인간 본성의 면모를 풍부하게 살리며 생동감 넘치는 연출을 더했다. 여기에 화려한 몸짓으로 치열한 전투를 표현한 잭슨족과 아더왕과 기사들의 전투 장면도 볼거리다.


스스로 왕의 자질을 의심하던 아더는 결국 스스로 왕관을 쓴다. 아더의 스치는 불의에 달려들던 패기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고민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가’라는 의심은 ‘지켜내야만 한다’는 의무로 성장한다. 화려한 볼거리에 끌려 공연장을 찾았다면, 아마 무대 위의 소년이 왕이 되는 과정에 응원의 마음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뮤지컬 '라이온 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