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렌이 준비 01
이제 고작 서른짤, ‘어렌이’ 준비됐나요 01
(어른이+오렌지, 상큼한 어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랬다. 학창시절에는 같은 반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며 나의 존재성을 드러냈고 취업을 하자 회사 동료, 선배들과 새로운 인맥을 다지며 나만의 활동 구역을 구축하기 바빠졌다. 매일 얽히고 쌓이는 관계들 속에서 이따금 우울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침, 점심, 저녁 붙어 다녔던 학부 친구들은 직장인이 되자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는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돼버렸다. 몇몇이 생일 때 ‘생일 축하해!’ 한 마디 메신저를 보내주는 친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물론 이 생일도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 뜬 알림으로 알게 됐을 터지만 말이다.
회사 안의 관계는 더욱 복잡 미묘하다. 밝게 매일 웃던 사이였던 사람이 일로 엮이면 극도의 짜증스러움과 답답함을 주는 사람으로 뒤바뀐다. 넘의 팀이었을 땐 그리 사람 좋아 보이던 사람도 같은 팀이 되고 나의 상사가 되는 순간 날카로운 못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선배 말이라면 모든지 ‘네! 네!’하며 새벽까지 밤을 새서 일하던 것도 모두 지난 시절이 된다. 지적과 화로 가득 찬 선배의 쏘아붙임을 당하는 순간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단순 후배에게 따끔하게 한 소리였고 5분의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겐 서러움, 그리고 매일 생각하게 되는 깊은 상처의 시간이다.
관계의 큰 지각변동이 있는 서른.
그래서인지 관계로 인한 공허함과 우울함에 가슴이 간지러울 때가 많다. 곰곰이 생각한다. 그 친구는 뭐하고 지낼까. 이 선배는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등등 …
생각의 끝은 내가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치닫는다. 내가 학부시절 이 친구와 더 친했다면. 선배에게 처음부터 싸가지 없게 대답했다면. 등등 …
다른 나를 꿈꾸는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나를 바꾸면서까지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를 이어갈 필요는 없다. 평소 온화한 미소로 후배를 항상 대하는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것 같다. 물론 정말 온화하고 존경할만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소외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전엔 많은 친구,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었다. 이제는 다르다. 나를 정말 아껴주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가족, 친구, 동료 몇몇이면 충분하다. 다른 관계는 큰 기대하지 않겠다. 굳이 그들의 기분에 맞춰 나까지 함께 롤러코스트 타지 않겠다.
“내 기분은 내가 결정해!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