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공연보다 기억에 남는 5분
커튼콜(curtain-call). 보통 커튼콜은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에서 공연이 끝나고 관객의 박수에 답하여 막이 내리기 전에 배우와 음악 연주자 등이 인사를 하는 시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뮤지컬에서의 커튼콜은 단순히 ‘인사’ 시간으로만 여길 수 없다. 2~3시간의 공연을 본 후, 본 공연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커튼콜만 생각난다는 관객부터 커튼콜이 재미있고 인상깊어 재관람을 결심했다는 관객까지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대사, 춤사위, 노래가 끝난 후 진행되는 커튼콜은 현대 뮤지컬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가장 즐거웠던 커튼콜을 뽑으라면 뮤지컬 ‘킹키부츠’를 말할 수 있다.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되는 그 순간 관객 모두가 약속한 듯이 손뼉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흥겨운 공연을 보며 어깨를 들썩이며 꿈틀거렸던 관객들이 ‘내가 박수치고 춤출 순간이다!’라며 박차고 일어난 듯 보인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는 둘을 연결 짓는 계단이 있어 뮤지컬 등장인물로 나오는 엔젤이 직접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춤을 춘다. 콘서트 현장과 같은 커튼콜을 볼 수 있다.
엔젤이 객석으로 내려오는 광경은 오직 한국 공연에서만 볼 수 있다. 이 계단은 공연을 위한 장치가 아닌 오로지 경쾌한 커튼콜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이 커튼콜이 즐거웠던 이유는 한가지일 거다. 바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어지고 관객이 함께 즐기는 참여 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연극과 달리 비교적 10~20여만원대의 고비용을 지불하는 뮤지컬은 무의식적으로 ‘고품격’ ‘문턱 높은 공연’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 안에는 무대 역시 관객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접근 금지의 공간으로 여기게 한다.
우러러보던 배우가 객석으로 내려와 함께 손을 잡아주고 장난 섞은 포즈와 제스처 등을 취하는 커튼콜에서는 묘한 감정적 교류가 이뤄진다. 결과적으로 공연 전체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지고 더욱 그 공연에 빠지게 된다.
전체 등장인물이 나와 함께 손을 잡고 인사하는 커튼콜 모습은 본 공연에서는 볼 수 없지만 관객으로서 꿈꾸는 ‘화합의 장’을 보여준다는 점도 공연의 기쁨을 더해준다. 선과 악이 분명한 내용의 뮤지컬 커튼콜은 이같은 희열을 극대화한다.
뮤지컬 ‘위키드’ 커튼콜을 보면 공연에서 대립하던 모든 등장인물이 나와 함께 같은 춤을 추고 웃으며 노래를 한다. 관객은 공연이 잘 마쳤음에 박수를 보내고 또 공연을 보는 내내 졸였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내리면서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커튼콜 대부분은 작품의 대표 넘버를 다시 부르고 장면을 보여주지만 특별하게 커튼콜만을 위해 준비한 넘버를 선보이는 작품도 있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커튼콜에서는 레퀴엠을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원래 장례식 장면을 위해 작곡된 넘버였으나 공연 직전 러닝타임문제로 본 공연에서 삭제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곡은 커튼콜 넘버로 선정됐고 관객들은 공연에서 듣지 못한 넘버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브랜든 부인의 목소리로 넘버가 시작되고, 이후 조연부터 주연까지 커튼콜 인사 순서대로 파트가 배분돼 노래가 불린다.
주크박스 뮤지컬인 경우 커튼콜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뮤지컬 ‘그날들’을 본 관객은 마지막 커튼콜 때문에 뮤지컬을 다시 관람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姑 김광석의 노래를 활용한 뮤지컬로 공연이 마친 후에는 김광석이 살아 돌아와 콘서트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기곡들이 연달아 연주되고 노래한다. 관객은 이야기가 있는 극 작품과 귀가 즐겁고 감동까지 있는 콘서트 현장을 모두 경험한 기쁨을 즐길 수 있다.
좌석에 앉은 후 유일하게 촬영이 허가되는 시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SNS가 발달한 요즘은 공연 정보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플랫폼에서 찾는다. 이때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들이 촬영한 커튼콜의 사진이나 동영상이다. 작품 대표 넘버를 먼저 듣고 모든 배우가 무대에 선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커튼콜은 남녀 주인공이 석양을 배경으로 90도로 허리를 꺾어 키스하는 장면으로 알려졌다. 각종 SNS에는 ‘#바람과함께사라지다 #커튼콜’ 이라는 해쉬태그, 검색어로 화제의 영상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커튼콜 촬영을 금지하는 작품도 생기곤 한다. 저작권 위반을 막겠다는 의지와 촬영을 허가하면 공연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관객들에겐 큰 아쉬움이다. 커튼콜의 감동은 생각보다 짙다. 공연을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커튼콜 노래를 흥얼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거다. 이 감동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관객의 마음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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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일어나서 두 손을 ‘짝짝짝’
경계가 사라지는 마법같은 시간
5분의 커튼콜이 오늘도 기다려진다.
ray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