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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예진 Feb 27. 2017

[영화]AI와 사랑에 빠진 그의 이야기

그녀 Her, 2013

매끈하게 코팅된 사랑에서 벗어난 날것의 사랑. 인공지능 운영체제 여인, ‘사만다’와 그녀를 사랑한 ‘테오도르’의 이야기다.


인간이 아닌 컴퓨터와 사랑하는 이야기라니. 현실성 없는 영화로만 여겼다. 하지만 영화 속에 표현되는 ‘공허함’ ‘외로움’ 그리고 사만다와 대화로 채워지는 ‘기쁨’ ‘행복’은 여느 영화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니, 허공에 내뱉듯 매일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지쳐버린 사람, 또는 대답 없을 ‘그’ ‘그녀’의 답장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누군가에겐 ‘위로’가 됐을 테다.

대사.

“나 더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인 척 안 할 거야”


‘척’ ‘척’ ‘척’ 하기 바쁜 시대. 사랑할 때도 나를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콧대 높게 뽐내려고 한 걸까. 사랑할 때 ‘척’해봤다면 그건 아닐 거다. 첫째. 상대방이 나를 떠나진 않을까, 란 두려움. 둘째. 누구인 척을 해서라도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함일 테다. 공통적으로 두 이유는 오롯이 ‘내’가 아닌 ‘그’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망각이다. 사랑의 망각.


사만다는 테오도르와의 육체적 사랑을 하기 위해 대리인을 부른다. 카메라와 이어폰을 낀 대리인은 사만다의 역할을 하지만 테오도르는 이를 거부한다. 인간이 아닌 사만다가 인간인 척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때 사만다가 말한 대사다. “나 더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 인척 안 할 거야”


장면 1

그녀, 나가 운영체제임을 절실히 인정한 둘의 데이트(대화)는 홀가분 그 자체다. 지친 일상 속 이어폰을 끼고 “Hello?” 한마디면, 사만다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더블데이트도 한다. 친구 연인과 사만다, 테오도르는 함께 여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옥상에서 바람을 쐬며 사만다와 데이트를 하는 이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들만의 ‘순수함과 노련미’가 동시에 엿보였기 때문. 소년처럼 설레는 미소를 띠며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모습은 신이 난 아이 같으면서도 ‘너에겐 모든 걸 말하고 싶어’라며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모습은 노련하기 그지없다.


장면 2

시공간을 사랑한 그. 눈물이 핑 도는 장면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만난 후, 별거 중인 부인과 만나 이혼 서류를 작성한다. 사인할 찰나, 테오도르의 머릿속에는 지나온 추억이 지나간다. 그녀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던, 고깔을 쓰고 장난을 치던, 일상 속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이별한 그녀와 함께한 시간, 공간, 분위기,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별, 진한 연필심으로 함께 그려온 그림을 지우개로 벅벅 지워야 하는 순간이다. 힘을 줘 지워도 자국은 남게 마련이고 억지로 지우다 종이가 찢어져 다신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별 후 다시 사랑을 결심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일 테다. 그녀의 얼굴을 잊어도 그녀와 함께한 시공간은 모든 감각으로 기억해서. 아직 다른 시공간으로 빠질 준비가 안된 것이다.


++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

사랑을 끝맺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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