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하기 싫은 회원가입을 해야 하나
토요일 오후. 한 건물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줄이 보인다. 마치 놀이공원 인기 기구 앞을 연상케 하지만 이곳은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디뮤지엄이다.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이라면 이 줄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주말을 맞아 여유롭게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즐기고 싶단 생각은 바보스럽게 느껴지기 쉽다. 적게는 15여 분, 길게는 30여 분 기다려야 하는 줄을 보고 ‘그냥 돌아갈까’ 아님 ‘기다리고 볼까’란 고민을 하게끔 한다.
‘예술 거장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이 정도 기다림은 필수 아니겠어?’라는 생각으로 줄 맨 끝으로 섰다면, 줄의 정체를 알고 적잖게 화가 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나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서 기다리던 줄의 목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장소의 줄은 한꺼번에 몰려든 인파를 관리하는 차원의 줄이다. 예술 작품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이곳을 찾은 방문객에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단계별 입장을 통해 방문자의 안전과 최적의 예술 감상 환경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디뮤지엄의 줄의 정체는 무엇일까. 줄을 기다리다 보면 한 푯말이 눈에 띈다. ‘온라인회원 인증’. 줄을 선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매표소에서 온라인회원인지를 확인 받고 입장하는 것이다. 티켓이 있어도 소용없다. 무조건 한 명씩 회원 가입을 인증한 화면을 보여줘야 한다.
회원 가입이 안된 사람이라면? 입장 불가. 티켓이 있어도 물론 같은 대답이다. 줄을 서는 동안 모바일 ‘디뮤지엄’ 앱을 다운받았고 부랴부랴 회원 가입을 한 후, 티켓과 인증 화면을 보여주고 30여 분만에 전시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저기요! 꼭 회원가입 해야 하나요?”
“네, 회원가입 해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줄 중간중간에 서있는 디뮤지엄 안내자에게 물었지만, 이 역시 답은 같았다.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요즘, 꼭 필요한 경우 개인 정보를 기입해야 하는 회원가입은 되도록 면피한다. 물론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땐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회원주문’과 ‘비회원 주문’이 있을 정도로 홈페이지 회원이 아니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 회원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회원 가입 절차라는 ‘귀찮음’과 개인 정보 기입이라는 ‘거부감’이 큰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디뮤지엄은 회원가입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고 있다. 온라인 회원 인증이 꼭 필요한 경우는 이와 같다. 1) 소셜 할인가 예매 (현재 홈페이지를 보니 인터파크 구입은 제외됐다) 2) 온라인 회원가 현장 구매 3) 기업문화초대캠페인 3)프리티켓 4)이벤트, 프로모션 초대.
사실 기존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다. 하지만 나와 같은 불쾌감을 느낀 이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온라인 회원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의 일부겠지만, ‘무조건’적인 방침은 방문자의 반발심만 부추길 뿐이다. 디뮤지엄은 수준 높은 예술 전시를 하기로 잘 알려진 공간이다. 만약 이런 방침 없어, 기분 좋게 멋진 전시를 보고 나왔다면 ‘다음에도 이와 같은 전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디뮤지엄의 공식 앱을 스스로 찾았을 거다.
지금 나의 스마트폰에는 디뮤지엄 앱은 삭제됐다. 긴 줄 끝에서 확인 받은 후, 보란 듯이 화면에 앱을 꾹~눌러 엑스자(삭제버튼)를 눌렀기 때문이다.
ray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