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by 유현우

비어 있는 페이지를 보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스친 기억을 미행하고 포획했다. 문장이라는 거창한 몸집이 자리 잡기는커녕 과연 어제도 한 줄 평이었다. 캑캑거리어도 물을 삼키어도 가시는 편도를 가로질러 누워있다. 나는 사 년 묵은 일기장을 펼쳐내었다. 빼곡하다. 시기와 질투, 욕구와 푸념을 주제로 한 나의 틀에 박힌 일지였다. 정신이 사납다. 이불을 덮고 있었다면 당장 발로 찼겠다.

안경을 거꾸로 쓰고 출근할 정도로 정신이 없는 요즘이다. 꽉 찬 두 달도 아니 된 일기장은 방구석 책상 위에 놓여있다. 그녀는 일터에서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면 펼치고 싶고 비어 있는 페이지를 보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신경이 쓰일 것이 자명했다. 당분간 거리를 둡시다. 기약 없습니다. 그녀는 나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린다. 나는 온전히 나를 닦고 나서야 그녀를 꺼내기로 하였다. 그날은 목이 마르고 물을 마실 것이다. 그리하여 물은 아주 부드럽게 흐를 테다. 신경 쓰이는 것 없이 아주 부드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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