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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by 유현우

도착했다. 공간에 무사히 도착했다. 다행히. 줄지어 지나간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의자를 식탁 위에 거꾸로 벌을 세우기부터 시작했다. 똑바로 서 있으라고 왼손 검지 손가락을 강단 있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다. 그리고 머릿속을 지배하는 잡념과도 같은 존재들을 안에서 밖으로 쓸어낸다. 머리칼부터 과자 부스러기, 커피 가루, 거미줄 등 지금 당장 공간에 쓸데없는 것들이다. 쓱쓱 쓸어내 버린다. 기분이 나아졌냐고? 첫 번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전혀. 나아질 기색이 없다. 어제의 공기와 작별 인사하고 오늘의 공기를 맞이하는 공기 빼기 작업을 마치고 문을 퉁 닫아 버렸다.


담배가 떨어졌다. 공간에 도착하기 오 분 전 마지막 한 개비를 불쾌하게 태웠기 때문이다. 일렁이는 햇살에 비치는 나뭇잎 사이사이에 잿빛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를 때의 기분이 그리운 날이다. 운수 좋지 않은 날이다. 운수대통해야 하루가 완벽할 듯 헌데, 잿빛 하늘이 원망스럽다. 담배 한 갑 주세요.라고 나는 담배 한 갑을 산 뒤 왼쪽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다시 공간으로 돌아와 벌 세운 의자를 내려주려다가도 말았다. 재빨리 나는 미니 턴테이블 키링이 달린 차키를 들고 가을볕이 따사로운 단풍나무 아래를 목적지로 삼아 밖을 나섰다. 아, 남이 타주는 커피를 사려다 나름 내가 타는 커피를 사랑하기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사람 시늉을 내며 커피를 내리고 밖으로 나섰다.


도착했다. 공간에 반드시 도착하고야 말았다. 살았다.


기분 나빠서 미치겠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 눈을 감기 시작하고 꽉 찬 다섯 시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잠을 자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가 기분 나쁘게 시작해 부정의 감정은 매 사건마다 거듭 반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요즘이다. 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갈지도 모른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아침이라 함은 반드시 밝은 빛이 나를 반길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비가 내린다. 애매하게. 내리다 말다를 반복한다. 마치 내 기분이 좋아질 듯 말 듯하는 것처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내 기분도 변한다.


'살면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던 어느 면접관의 질문이 떠오르는 하루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라고 해야 한다, 이다. 면접 보고 있는 이 공간이 편할 리가 있는가, 면접관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억지로 웃고 있는 내 태도부터가 거짓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라고 대답하고만 싶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은 나만 보면 된다. 절대로 기분을 드러내서는 아니 된다. 특히, 부정의 감정을 될 수 있으면 거짓말을 치는 게 나을 듯싶다. 선의라는 아름다운 말로 가면을 씌우던. 예를 들면, 선의의 거짓말.


첫 문장부터 기분이 태도가 된 거짓말을 쳤다고 고백하련다. 지친 기색을 내 공간에서 과연 드러낼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의자를 거꾸로 세워 벌주는 일, 안에서 밖으로 쓸어내는 빗질, 공기 빼기 인사, 품격 있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일을 반복하는 일만 해도 아름답다. 그 외 부정의 감정이 드는 건 사치일 뿐이다. 거짓말을 치느라 고생한 나에게 커피 두 잔의 여유를 선사하기로 한다. 아, 마일즈의 Bye Bye Black Bird까지 선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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