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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도, 퀀도, 퀀도

by 유현우

겨자색 램스울 니트를 입었더니 다리는 은행나무뿌리(굵다는 의미보다는 테이퍼드 치노팬츠 색상이 브라운이기에), 왼팔을 위로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더니 은행나무 이파리와도 같다. 지금은 그런 계절이다. 아이리시 커피를 마시며 아이리시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는 양갈래 머리의 그녀. 일주일 전 필터 커피만 연거푸 마시다 비엔나커피 도전 후 오늘도 거듭 비엔나커피를 주문한 체중관리에 돌입한 남자. 그리고 처음 방문했을 때 서평을 쓰는 일이 생겨 자랑 아닌 자랑(어쩌면 내 작은 꿈이기도 해 자랑이라고 생각한다)을 드러내고, 오늘은 갑자기 마일즈 데이비스와 스티비 원더 LP 유무를 묻고, 신청을 제안하는 장바구니 가득한 그녀.


금요일 오후 여섯 시는 마일즈 음악을 듣기 좋을 때다. 고독함의 대명사. 마일즈. 그의 트럼펫 솔로는 모두가 식사를 하러 갈 시간에 나를 고독하게 만들어 준다. 담배를 태우기엔 충분히 크지 않은 방만한 공간에서 담배 대신 고독을 태우게 만들어 주는 마일즈. 마일즈 LP 유무를 묻은 그녀는 큰 실수를 범했다. Steamin' 수록곡 'Diane'으로 당신의 고막을 책임져 드리겠습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뒤 바늘침을 살포시 툭 올려놓았다. 마일즈 솔로 뒤에 오는 존 콜트레인의 테너는 잠시 마일즈를 잊게 만든다. 어찌 됐든 은행나무 가득한 가을, 외로운 시간을 태우지 않고 고독을 함께 태울 수 있도록 용기 낸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마일즈 이후에 스티비 원더의 독특한 보이스로 흐르는 고막을 응고시킨 뒤, 나는 비엔나커피와 어울리는 마빈 게이의 소울로 다시 고막을 흐르게 만들었다. 물론, 비엔나커피를 마시는 그이를 위함이 컸다. 내 마음이 들킨 것 마냥 그는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LP 콜렉터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한가. 타츠로 야마시타 시티팝, 스콜피온 락밴드, Dirty Dancing SoundTrack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디깅 하는 데 있어 중구난방이 절대적으로 아니하고,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구나라고 여기는 순간, 음악을 순수하고 열정의 자세로 임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타츠로 야마시타의 'Morning Glory'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는다.


동네 친구가 보고 싶다고 그에게 나는 말했다. 금요일 오후 여덟 시가 되자 전람회 2집 타이틀곡 '이방인'을 턴테이블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놓았다. 쉴 곳을 찾아서 결국 또 난 여기까지 왔다며 말을 건네는 듯하다. 감정의 휴식처. 정착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세계에 반항하거나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착각이 아닌 확신이 들 때면 전람회의 '이방인' 혹은 쳇 베이커의 'YOU CAN'T GO HOME AGAIN'을 듣기를 바라며. 위로와 공감을 원하기엔 이제 하품이 나오는 그대에게 세상을 수용의 자세로 맞설 때이지 아니할까 싶은 조심스러운 생각과 함께 이들의 음악을 추천드리며. 가을 냄새 가득한 바깥세상과 가을 냄새 은은한 내면 세상의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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