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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vsnjutare Nov 12. 2018

북유럽을 공포로 몰아넣다

2017년 4월 7일 스톡홀름 트럭 테러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를 통해서

'나는 찰리입니다 (Je suis Charlie)'와 '나는 찰리가 아닙니다 (Je ne suis pas Charile)' 운동이 

한참 펼쳐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파리테러가 유럽을 특히나 더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유는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중국적자 부모의 자녀였기 때문에 사실상 프랑스인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과, 정말 잔혹하게도 프랑스인을 타겟으로 삼아 테러를 자행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후 2016년부터 프랑스는 국적법을 바꿨고, 근방국가로서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독일과 영국 등지에서 테러 위협 및 사건 발생이 끊임없이 위기로 등장하는 한편, 시리아사태 이후 이탈리아를 통해 지속적으로 난민이 들어오고 있어 유럽에서는 현재 마레 노스트레 (Mare Nostre) 라는 해군작전을 통해 이들에게 공격하거나 유입을 막고 있으며 이 작전은 2009년 유럽의회에서 통과되어 2012년부터 발효되었습니다.


한편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근대적 전쟁에는 단 한번도 참전해본 적 없는 스웨덴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에게 임시여권을 발급해주는 등, 인도적 위기의 극복에 앞장섰고, 난민문제에 있어서도 주변국 덴마크와의 지속적인 마찰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유럽에서 인도적 원인(내전, 이재민 등의)으로 인한 난민을 한 해 최소 4만 5천명에서 10만 명을 유입함으로서 굳건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외국인이나 난민에 의한 범죄율이 굉장히 낮습니다. 2017년 1월의 웁살라 폭행사건 (나중에 다룰 예정) 과 2017년 10월 집단폭행 사건처럼 아주 큰 일이 아닌 이상은 사실상 범죄를 크게 저지르지도 못하고 IS에 연관되어있다고 일반화해서 무리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스웨덴은 한국보다 이중국적자나 외국출생자이지만 스웨덴 국적을 가진 인구 비중이 훨씬 높고 (약 25%), 도심에 가면 이슬람은 물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선량한 시민이고요. 국제연합에 가입한 한국이, 난민법도 아시아에서 최초로 5년 씩이나 전에 발효한 한국이, 여전히 예멘 문제에 대해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https://www.imi.ox.ac.uk/blog/the-unfolding-of-the-2018refugee-crisis2019-in-denmark-and-sweden


위의 기사는 2017년 5월 18일, 국제이주연구소의 조사에 따른 부분을 옥스퍼드 대학교가 인용한 기사로, 

덴마크는 스톡홀름 테러 이후 스웨덴을 비난하며, 여행과 무역을 위한 국경개방만을 하겠다고 할 정도로 

당시 굉장히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덴마크는 스웨덴이랑 다르게 외국인에 대해 비자도 잘 안나올 뿐더러 굉장히 엄격한 나라거든요.


또한, 스톡홀름 테러는 저도 스웨덴에 들어온 직후 겪은 일이고 차별 아닌 차별을 비롯해서 정말로 너무나 심각한 안보위협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미'를 위한 포스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시고, 나는 외국인에 대해 기분나쁘게 생각하거나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는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1년이 지난 지금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피해자분들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테러의 발단 


2017년 4월 7일은 사실 굉장히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다를 것 없는 삶이 이어졌고, 사건 근방의 지역은 

스톡홀름 도심의 쇼핑타운과 먹거리들이 즐비한 곳이었기에 사람들은 여가시간과 바쁜 일처리를 위해 항상 북적거리는 곳인데, 당일 오전 11시 30분경 스톡홀름 도심으로부터는 조금 떨어진 서부의 Varby gård역 근방에서 범인 Rahkmat (당시 39세)는 IS 사인으로 추정되는 모션과 함께 테러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남기게 됩니다.




바로 이 사진이 올라온 이후 그는 전철을 타고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이 근방에 fittja 라고 있는 역이 있는데, 이 지역과 함께 신도시로 부상되고 있는 한편 중동계 및 아시아계 이민자가 스톡홀름 근교에서는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스톡홀름 완전 남서부에있는 Södertälje를 가기 전까진 제일 많습니다. 근방 마트에 가면 한국라면이 있을정도로 아시안과 중동계, 흑인계 인종이 많이 삽니다.). 전철을 타면 약 35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로, 경찰의 수사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당일 오후 12시경 스톡홀름 중앙역(T-Centralen) 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점심시간과 겹쳐있던 터라, 근방의 시스템볼라겟에서 주류를 싣고 출발한 트럭이 Adolf Frederiks Kyrkogata (아돌프 프레데릭 대성당 근방 거리) 에서 물건을 내리고 정차한 틈을 타 트럭을 납치합니다.


https://goo.gl/maps/N1X6XHtJGr62


몇 분 지나지 않아 물건을 다 옮기고 나온 기사와 그가 눈이 마주쳤고

그는 재빠르게 차로 올라타 그의 차량절도를 막아서려는 기사를 가볍게 경상을 입히고

트럭을 몰아 사건 현장 근방으로 돌진하기 시작합니다.

오후 2시 47분,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왜 이 테러가 스웨덴에 특히 공포감을 주었나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스웨덴의 운전 문화에 있습니다.



 


스웨덴은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굉장히 어려운 나라로 유명합니다.

스웨덴에 살 때 친구에게 물었는데 최소 2년 이상이 걸리는데다 시나리오도 몇개씩이나 되서

웬만큼 운전을 잘하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고 들었거든요. 게다가 신호등이 없이 표지판으로 횡단보도가 있는 길이 굉장히 많은데 절대 그 근방에서 과속하지 않고 신호등이 없어도 보행자를 우선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사고가 거의 날 일이 없어요. 


그런 안전운전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트럭을 납치해 시속 80km로 길거리에 돌진하여

20명을 다치게하고 5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으니, 적잖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데다

2005년 이후 외국인으로 인한 고질적인 갈등구역 말뫼(서부 도시)의 로센고드를 제외하곤

스톡홀름 시내 한가운데에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더욱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테러는 어떻게 발생했나 - 과정


 


 

그는 차를 납치하고 나서 옷에 사제폭탄을 두르기까지 하고, 그것도 안되면

더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해 역시 다른 사제폭탄을 조수석에 들고 탑니다. 이후, 그는 노르말름에 있는 

쇼핑센터가 밀집된 Drottningsgatan으로 돌주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시속은 약 50마일 (80km).

건물이며 사람이며 가리지 않고 트럭에 의해 짓밟히거나 공격당하기 시작했고, 트럭은 200미터 앞의 이어 Sergelstorg로 갑니다. 시속은 5마일이나 빨라졌고 살인적인 자동차의 역주행과 돌진에 대책없이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범행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저질렀는지 그 경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Drottninggatan 에서 차를 훔쳐, 사람들을 공격하고 30분만에 Åhlens city 백화점 (한국으로 치면 신세계백화점) 에 차가 추돌후

그가 도주하면서 테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m8p42CkD8k


당시 테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보여주는 상황으로 인도와 차도가 완벽히 구분된 도심에서

자동차가 갑자기 나타나 공격하는 부분이 영상 30초쯤에서 나타납니다. 근방 매장의 CCTV로 추정되는 

것에 의해 목격된 부분인데 이렇게 이 차는 약 20분동안 700미터의 죽음의 질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총 16명이 다치고, 5명이 사망했습니다. 4명은 그 자리에서 거의 즉사했고, 1명은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도중 쇼크사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망한 5명의 피해자는 왼쪽 좌측부터 최연소 사망자 Ebba(11), 그리고 평범한 가정주부 Lena (66), 교사로 일하고 있던 Maria Kide (61), Spotify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영국인인 Chris Bevington (43), 벨기에 출신의 심리치료학자 Dereymaker (31) 로 나이, 인종, 출신, 성별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이후 Sergels torg (사건 현장 근방)에는 이런 꽃다발을 놓는 추모행사가 4월 중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불과 3개월 후 이 사건을 모방해 IS를 추종하던 20대 남성이 핀란드 투르쿠 시에서 흉기난동을 부려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테러를 저질렀고 어떻게 잡혔냐 


이쯤되면 20명 가까이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다치게 만들고 수백명을 공포에 몰아넣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집니다. 바로 이남자입니다. 이름은 Rakhmat Akliov,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난민으로 사건 당시 39세.

2018년 2월 9일 최종 공판에서 8년 형을 선고받고 이후 강제추방 조치가 내려질 예정이며

2차로 우즈베키스탄에 신병이 인도되어 국내법으로 또 한 번 처벌받을 것이라는 소식이 밝혀졌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 정착하여 근근이 벌어먹던 그는 2009년경부터 그의 형제와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공장지대에서 일했고, 2012년 말 일자리를 잃은 이후 2013년 폴란드를 통해 스웨덴에 비자를 신청해 2014년 10월 10일 입국했으며, 건설직 일용노동자 정도의 지위로 일했습니다. 중앙아시아 민족사람으로서 러시아에서 견뎌야만 했던 차별을 비롯해 여러가지 이유인것으로 밝혀졌으나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럽에는 현재 더블린 규약이라고 해서 난민이나 인도적 보호를 이유로 비자를 신청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신청자가 신청한 국가가 반드시 의무를 다해야하고 신청자는 '아무 나라나 가서 쉽게 정착하겠다' 라는 단점을 막기 위해서 유럽연합에 소속된 국가끼리 체결한 협약입니다. 그는 스웨덴에 망명지위를 신청했기에 스웨덴이 이 남자를 보호해야 했어요. 


그러던 도중 2014년 말경 터키 국경까지 가서 IS에 대해 선전하고 열렬한 호응을 표시한 바 있었던 것이

2016년 스웨덴 경찰 정보국인 SAPO에 의해서 그 첩보가 입수되면서 스웨덴에서도 그를 난민으로 인정할 것을 보류하고, 결국 2016년 12월 말 그의 난민비자 신청이 거부(Denied; Avslåt)됩니다. 실제로 테러를 자행하기 이전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소셜미디어에 그것을 올렸고, 2015년 이후부터의 포스팅을 살펴본 결과, 이슬람계 강경집단의 지류 중 하나인 Hizb-ut-Tharir (히잡-웃-타리르) 등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2017년 4월 7일 사제폭탄도 터지지 않자, 그곳에서 신속하게 도망가 연락을 끊고 잠적해있다가

4월 8일 오전 1시 15분 스톡홀름 북부의 공항 근방지역 Märsta 에서 최종 체포되면서 끝났고, 3주 반쯤이 지난 4월 25일 수사 끝에 사건에 대해 자백했고, 2월 최종 재판에 따라 9년 형 + 강제추방 + 우즈베키스탄에서의 2차 처벌이 결정되었습니다.




#이후 파급력


당시 범인이 아시안이었기 때문에 스웨덴으로 들어오는 아시안이나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들에 대해서는 입국부터 까다로워졌고, 4월 8일 비자 보류 상태에서 영국에서 들어오자 실제로 공항에서 Criminal Record를 요구받았고, 이미그레이션 인터뷰만 40분 이상 할 정도로 굉장히 엄격해졌습니다. 이후, 그 해 7월까지 웁살라나 스톡홀름에서도 교통카드의 유효성을 하나하나 기계를 들고다니며 체크하고, 중앙역에 경찰들이 자주 보이게 되는 심심찮은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스톡홀름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테러로부터 거의 5개월이 지났는데도 매일매일 출근때마다 교통카드를 검표했고, 한층  보안을 강화했습니다.


가장 단적인 결과로 2018년 9월 9일 있었던 스웨덴 대선에서 임미 오케손이 이끄는 스웨덴 사회민주당 (사민당, Socialdemokratina가 아닙니다) 이 제4당에 오르고 72석이라는 놀라운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습니다.


이후 8월에 핀란드에서 모방범죄가 일어났고, 북유럽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시작 4일만에 벌어진 테러는 스웨덴에서의 초반 3,4개월간의 삶을 뒤바꾸기에도 충분했고, 이 포스팅으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다음 워킹홀리데이 포스트는 4월 11일 비자를 위해 독일로 갔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의도치않은 3번째 여행 방랑에 대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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