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오무쌉

카오짜이. 다음엔 맥주와 닭튀김을 꼭 먹고 말리라

by 레이

여전히 재개발이 끊이지 않는 을지로에선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면서 노포든 아니든 꾸준히 들르던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도이농이다. 도이농 정도면 어디로 옮겼다 정도의 안내가 붙을 법도 한데 그런 안내 하나 없이 하루아침에 식당이 문을 닫으니 서운기도 하고, 카파오무쌉을 어디 가서 먹나, 속상했다.


점심 약속이 되어 있던 어느 날 스멀스멀 비도 내리길래 굴짬뽕이나 하실래요? 했는데 손님이 갑자기 태국 음식 어떠냐고 물었다. 아, 진짜 좋죠, 어디 아시는 데 있어요? 어멋, 회사 길 건너편 건물 7층에 아는 태국음식점이 있다는 거 아닌가. 가요 가요, 방향을 돌려 길을 건넜다. 마침 횡단보도도 초록불로 바뀌었다.


그 건물이 백화점이던 시절에 7층이 아마 식당가였던 거 같아요, 뭐 그런 구닥다리 이야기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렸더니, 고독한 대식가, 아니 미식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무실과 식당이 같이 있는 좁은 복도길이 나왔다.


코너를 살짝 도니 세 팀이 줄을 서 있었다. 손님은 이미 사장님과 눈을 맞추는 동안 나는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카파오무쌉이 있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쪽 테이블 자리 비어 앉자마자 메뉴를 빠르게 스캔 했더니, 역시나 카파오무쌉이 있더라. 전날 술을 먹는 바람에 원래는 쌀국수로 해장을 할 생각이었으나 카파오무쌉한텐 이길 수 없었다. 암, 오늘은 못 이기지. 얼마 만의 카파오무쌉인데.

고들고들한 고기와 이 날만 넣은 건지, 아니면 이 집 레시피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던 깻잎의 쌉싸래함이 입 안을 파고들었다. (사장님이 깻잎이 들어갔다고 알려주길래) 전 날 술을 안 마셨더라면 두 그릇은 먹었을 거 같더라.


태국 맥주에 스프링롤 같이 먹으면 맛있겠다. 곧 다시 가야겠다. 까오짜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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