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전날엔 언제나 오곡밥을 먹었다. 딱히 지키지 않아도 되는 풍습이지만 그냥 밥하고, 나물 몇 개 하면 되는데 어려울 것 없다며 엄마는 매번 대보름 오곡밥을 챙겼다. 식구들이 나이를 먹고 저마다 입맛이 까다로워지니, 엄마표 오곡밥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리 집 오곡밥엔 쌀(찹쌀), 수수, 기장, 차조, 팥 이렇게 다섯 가지가 들어간다. 쌀과 찹쌀은 그냥 하나로 친다. 그런데 유난히 콩과 팥을 싫어하는 손녀 때문에 엄마는 약간 고민이 생겼다. 팥을 넣을 수도, 뺄수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은 팥을 넣은 오곡밥과 팥을 뺀 사곡밥을 지었다.
그뿐이랴. 밤을 넣은 육곡밥을 또 했다. 이건 왜 했는지 본인도 설명은 못하고, 그냥 밤이 좋아서 했다더라. 그러니 이번 정월대보름엔 사곡밥, 오곡밥, 육곡밥을 골라 먹을 수 있게 된 거다. 어릴 땐 그리 즐기지 않았던 오곡밥인데 나이가 들수록 입에 착 감긴다. 그런데 먹다 보니 어랏, 나도 팥을 뺀 사곡밥이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역시 나는 어린이 아니 젊은 입 맛인가 보다. 옛날엔 이게 부끄러웠는데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오곡밥엔 나물을 얹어 먹는 게 제일 좋지만 김을 싸 먹어도 좋다. 오곡밥에 곁들인 나물로는 섬초, 콩나물, 고구마순, 무, 시래기 다섯 가지다. 비금도 섬초야 겨울에 제일 맛있는 법이고, 시래기는 영암서 농사짓는 이모가 보내준 것이다. 고구마순은 주말 농장을 하는 지인이 주셨다는데 엄마 말로는 몇 만 원어치란다. 사진에 보는 것 말고도 많이 있단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무나물만 미운 그릇에 담겼다. 흥.
콩나물도 공장형이 아니라 가내수공업형을 사 오셨고(동네에 시장이 있어 이런 건 좋다) 무나물은 내가 참 좋아하는 거다.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무의 질감과 달달한 국물이 몇 젓가락 집어 먹어도 과하지 않다.
밤에 우연히 연락한 후배랑 대보름 얘기를 했더니 더위 사가란다. 요즘 나는 추위를 많이 타니 니 더위 다 내놓으라 했다. 올여름은 참 따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