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연인 시엔과의 사랑에 관하여. “반 고흐, 영혼의 편지” p.59.
불행을 나누는 일을 생각한다. 행복을 나누는 일만큼이나, 불행을 나누는 일 또한 중요할 것이다.그러고 보니 곁에 두는 가까운 이들과 서로 불행을 나눈 지 오래되었다. 큰 불행이 아니더라도, 작은 불행, 소소한 근심이더라도.
비단 나와 나의 가까운 이들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드러내는 것으로는 가능한 한 좋은 것만을 취해 비추려 하고, 좋지 아니한 것은 되도록 감추고 혼자 견디려는 풍조가 퍼져 있는 것 같다. 행복은 드러내고 나누되, 저마다 갖는 불행은 나눌 수 없는 것이 되어, 나누면 서로 곤란해지고, 무안해지고.. 그러니 홀로 감내하고 감당해야 할 일로 남게 되는 것.
행복은 나누고 불행은 드러내지 않는 삶은 일정 부분 가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삶은 아닐까 생각한다. 혹은, 삶이란, 타인과의 관계란, 어쩌면 그런 가식이 있기에 비로소 유지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행을 나누는 일을 다시 생각한다. 서로의 근심, 걱정을 염려하는 삶을 생각한다.
서로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닿진 못하더라도, 차마 드러내지 못한 서로의 불행을 살피고 염려하고 나눈다면, 근심, 걱정으로 어두운 영역에 빛이 들어 조금은 환해지지 않을까. 그럼 우린 서로 불행을 나눔으로써 빛은 들이고 그림자는 거두어, 밝음과 따뜻함을 나누어 갖게 되진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두움을 나누는 일은 서로를 더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밝음을 나누어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우린 서로의 불행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서로를 밝혀줄 수 있을 지도. 그런 밝음을 통해 위안도 조금은 섞어서 나눠 가질 수 있을 지도.
가까운 이들의 기쁨과 환희, 행복, 향락으로 채워진 삶들을 마주하며,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어둠, 슬픔, 불행, 근심들을 염려한다. 염려만으로 불행을 나누고 밝음을 전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노팅힐'의 저녁식사 장면
영화 ‘노팅힐’의 저녁식사 장면이 떠오른다. 가장 불행한 사람을 위해 남은 브라우니 한 조각을 건네던 장면.
불행을 나누는 일은 여전히 망설여지고, 삶은 계속해서 가식으로 점철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어디엔가 남겨둔 브라우니 한 조각이 염려가 닿을 이에게 전해지길. 나의 염려는 가다 멈추지 말고 가 닿길 희망한다.
불행을 나누는 일과 브라우니 한 조각을 남겨두는 일. 다른 말로달콤한 염려,보편적 사랑정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