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성향

by 희량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위쳐> 시즌3가 공개됐다. 오랫동안 새 시즌을 기다려왔던 난 공개당일에 5화를 모조리 감상해버렸다. 그러나 감상하는 동안 내 입은 온갖 투덜거리는 문장들을 뱉었다. 예니퍼는 왜 저렇게 행동하며, 시리도 답답하고, 작가는 꼭 인물들을 이렇게 그려야만 했냐며… 누가 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중간에 나는 잠시 영상을 멈췄다. 인물들이 마주하는 끊임없는 고난과, 도사리는 위협이 벅차게 느껴졌다. 인물의 선택과 행동이 모두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 같았다. 온몸으로 긴장하느라 피로할 지경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최근 들어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할 때, 멈추고 싶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이 치밀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위험한 실수를 하자, 나는 곧바로 감상을 중단했다. 똑부러지는 주인공의 실수도, 그 실수로 인한 결과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장면과 함께 연상된 단어는 '캐붕'이었다. 인물의 초기 설정과 부합하지 않은 흐름이 등장할 때 '캐릭터가 붕괴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인공이 보여준 모습을 고려하면, 절대 나오지 않을 실수라 생각했다.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멈춘 부분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영상을 펼치고 싶지만, 한번 회피하니 다시 직면하기 쉽지 않다. 나는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사람이라 자부해왔는데, 다시 보니 영 아니다. 언제부터 이러한 회피 성향이 두드러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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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웹문학의 생태를 떠올렸다. 웹툰이나 웹소설은 한 편 한 편 효과적으로 끊어져 있고, 며칠에 하나씩 천천히 감상한다. (물론 몇 만 원을 들이면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지만, 보통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인지 꾸준히 챙겨볼 만큼의 매력을 느끼지 않거나 호감도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감상을 그만둘 수 있다. 보통은 ‘하차’라고 표현하더라. 종종 ‘하차하겠다’고 선언하는 댓글이 눈에 띈다. OTT에서도 언제든지 감상을 중단하고 다른 영화로 대체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는 감상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구입했기 때문에, 비용의 효용을 위해서라도 대부분 자리를 지켰지만, OTT는 그럴 필요가 없다.


웹툰과 웹소설의 독자들은 전개가 느리거나 인물의 행동이 답답하면 작가를 탓했다. 짤막한 에피소드를 단편적으로 소비하는 웹문학은 서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좁게 만들었고, 독자는 이어질 이야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평가하고 비난한다. 나 역시 웹문학을 즐기는 독자로서 파편화된 서사의 흐름에 푹 젖어있을 터였다. 그래서 굴곡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도망치고 만 것일까?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스스로의 실수를 곧잘 해결하고 다시금 영민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난 벅찼다. 이야기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단편에 집중한 나머지, 이야기를 좇아갈 의지조차 흔들렸다.


서사를 에피소드로 인식하는 방식은, 흐름을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흐리게 만든다. 언제든지 멈추고, 언제든지 하차할 수 있는 환경. 200원씩 나뉘어진 감상의 단위. 짧은 에피소드 안에 원하는 인물의 모습과 사건의 흐름이 모두 담기길 원하는 욕심.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중한 판단. 그러고 보니 나는 유튜브조차 10초씩 넘겨가며 보았다. 나를 포함한 ‘요즘 애들'의 인내심 없음은, 여정을 그만두는 선택이 너무 쉬워진 환경을 뜻하지 않을까.


웹문학 이전의 감상은 어떠했는가? OTT 이전에는 어떻게 영상에 집중했던가? 몇 권의 책으로 엮인 소설을 물 흐르듯 읽고, 만화책을 쌓아두고 푹 빠져 읽었던 독자는 어떻게 반응했었지? 분명 인내심을 갖고 서사의 흐름을 좇아나갔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빛을 잃어버린 감상이 아닌가. 웹문학과 OTT, 글과 만화와 영상을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서사를 인식하고 즐기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문득 아날로그가 그립다. 책의 뻣뻣한 질감,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는 손짓.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 몰입감. 영화관에서 막을 내리면 비디오 파일을 구입해서 보아야 했던 그때. 천 원, 이천 원 비교해가며 고민한 신중함. 표든, 비디오든 사면 끝까지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단순히 효용만 따지는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감상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조만간 <외교관>의 이야기를 이어 감상해보겠다. 또 7월에 <위쳐> 시즌3 두 번째 파트가 공개되면 불만보다는 몰입과 집중으로 영화를 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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