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습작

by 희량

점차 욕심내는 중이다. 내 글의 가치를. 5년 동안 가늘게나마 글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주었다. 그러나 자신감만으로는 글을 욕망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른 작가님의 어엿한 글들을 항상 우러러보고, 더 잘 쓰고 싶다는 뭉근한 갈망이 있다. 글은 점점 내 삶의 확고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


회사를 나오고 학교로 들어온 지 반년이 흘렀다. 첫 학기는 해방감과 여유, 설렘, 확신을 누린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현실을 다그쳐 보내는 나날들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순간을 만끽하는 나날들이었다. 대학원 공부는 나랑 잘 맞았다. 그동안 안티에그에서 글을 엮으며 논문을 들춰봤던 시간이 발판이 되었다. 박사과정은 몰라도, 석사과정은 내가 선택해야 했던 길, 선택하고 싶었던 길이었음을 확인했다.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선택에 흔들림이 없어 나름 균형적이었다. 그렇게 퇴사로 인한 격양된 기쁨, 4년 만에 모교를 다시 다니는 반가움, 수업과 동아리 생활에 다시 활발히 참여하는 열정으로 첫 학기를 가득 채웠다. 특히나 긴장과 피로에 절여진 회사생활을 지나왔으니, 학교는 싱그러울 수밖에. 젊어진 느낌은 짜릿했다.


첫 학기가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고뇌와 먹고 사는 방법 같은 삶의 본질적 문제들을 나중으로 미루어두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부모님이 대신 짊어주셨고, 이제는 내 몫이 된 삶의 무게다. 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유와 나태 사이의 아슬아슬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시간은 여느 때처럼 쏜살같이 흐르고, 이제 슬슬 눈치가 보인다. 미래의 나한테. 좀 더 역동적으로 생계를 고민할 때가 왔다.


먹고 살 방법을 고민할 때는, 지금껏 거쳐온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컨설팅, 과외. 새로운 길보다는 가봤던 길이 선택하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내게 이 직업은 수단일 뿐이었다. 발전보단 유지를 위해 하는 일이었고, 도전보단 안주에 가까웠고, 먼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글 자체도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적어도 내용만큼은 내 목적과 방향을 고스란히 담았다. 요즘에는 근사한 문장이 욕심나는 걸 보면, 글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욕심이 있다'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했다. 배수진을 친 셈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쉬운 선택은 배제해보겠다는 신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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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님의 지혜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출판계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스스로를 브랜딩했고, 출판사도 직접 열었다. ‘이슬아’라는 이름이 수필계의 전무후무한 브랜드가 되었기에 가능한 행보였을 것이다. 또, 이분의 글이 친밀하고 상냥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가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슬아 작가님 이후에 메일링 시스템은 글 쓰는 사람이면 한번쯤 고민해보는 방법이 아닐까. 나조차도 감히 넘봤다. 그러나 내 메일함에 읽지 않은 채로 가득 쌓여 있는 뉴스레터를 떠올리니, 내 글이 저리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난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고 주장하기에는 게으른 편이었고, 에세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재능이 눈부신 젊은 작가들이 많았다. 내가 매번 간직하고 싶어하는 문장들을 비교했을 때, 내 문장은 매력도 없고 문학적 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써온 글은 온갖 자료에 파묻혔다가 몇 가닥 근거를 뽑아 엮어낸, 일종의 주장하는 글이다. 지적인 분들의 문헌을 참고하거나 고정관념을 뒤집는 명제로 문장의 빈 공간을 메꿀 수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는 수필을 쓰자니 부족한 문장력이 표피에 드러났다. 일상의 수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각과 문장이 고스란히 담기는 글이었다. 무엇도 가릴 수 없었다. 다듬었지만 날 것이었다.


내게 수필은 새로운 장르임을 깨달았다. 항상 써오던 일기와는 다른, 야심 찬 시도였다. 해오던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이미 문장을 욕망하고 다른 수필 작가님들의 글을 짙게 부러워하는 내 모습은 감출 수 없다. 대신 초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욕심 내지 않고 습작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종종 유명한 화가들의 전시를 보러 가면, 온갖 습작들도 수많은 명작 사이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지 않나. 습작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최선을 다해 적어본다. 그래서 이 글들은 열심히 낳아낸 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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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슬아 작가님의 메일링 시스템에서 존경스러운 부분은 글을 ‘매일의 노동’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만을 정의하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삶의 지난한 일상이고, 스스로 또는 부양가족을 아우른 책임이고, 꾸준히 시간과 요령을 쌓아가는 성실함이다. 글로 돈을 벌고 싶어한다는 뜻은 이런 의미다. 글이 지겹고 고통스럽고 하기 싫은 노동이 된다는 것. 지금껏 시간이 남으면, 여가 시간에, 부담 없이, 취미로 글을 써왔으나, 이제는 쓰기의 괴로움을 정면으로 마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용기 내서 부딪혀보겠다.


매일의 노동이 겹치고 겹쳤을 때, 그래서 무언가 쌓였을 때, 우리는 그것을 경력이라 부른다. 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슬아 작가님은 수많은 ‘일간 이슬아’를 거쳐 얼마나 성숙해졌을까? 내가 글을 노동으로 인식하고, 매일의 지겨운 일상으로 채웠을 때 내가 쌓은 것은 무엇이 될까? 그래서 노동의 상징적인 날들, 평일에 매일 습작을 이어볼까 한다.


이것이 바로 ‘평일의 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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