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림'의 새로운 뜻

by 희량

어떤 학교 홈페이지에 “예로부터 나라의 인재는 OO에 모여들었으니 그대 머묾이 우연이겠는가”라는 문구가 실렸다. 나는 감탄했다. ‘머묾’으로 표현된 학교생활이 낭만적이었고, 인재라고 넌지시 표현하는 칭찬이 다정했다. 그런데 친구는 ‘조금 오글거린다’고 말했다. 난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평소에 세상의 감성을 파고드는 글을 열심히 고민한 나머지, 젊은이의 감각을 잃어버린 듯했다. 난 이제 무엇이 ‘오글거리고 오글거리지 않는지’ 판단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 감각은 조금 두려운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오글거리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내 글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유행에 뒤떨어지고, 매력적이지 않고, 소위 찌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이 공포는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나는 취향을 한참 검열했다. 옷에 대한 취향, 좋아하는 가수와 배우에 대한 취향, 소설에 대한 취향, 만화에 대한 취향. 누군가 이상하게 여길까, 혹은 어떤 유행으로부터 뒤쳐질까, 나는 취향마저 보잘 것 없는 게 아닐까 감추고 두려워하던 여린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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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가 2016년 청춘페스티벌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한 말들이 청년들 사이에서 소란스레 퍼졌다. ‘진지충’, ‘십선비’, ‘중2병’으로 표현되는 누군가의 과함과 진지함은 그 사람이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특별한 빛과 색이라고, 그래서 남들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의 어떤 모습을 깎아내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지드래곤이 떠올랐다. 곡의 첫머리마다 속삭였던 나레이션, 뮤직비디오의 과장된 행동,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발음, 껄렁한 몸짓들. 그에게도 과한 진지함이 있었다. 이제는 모든 언행이 트렌드가 되는 사람이지만, 당시 누군가는 그가 지나친 끈적임이 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과잉은 스웩이 되었지 않나. 지드래곤은 그의 진지함을 숨기려고도, 포장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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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잠깐 알게 된 똑똑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참 진지했다. 태도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해서도 몹시 진지한 나머지, 영어를 CNN 뉴스로 공부해서 영어 문장을 앵커처럼 읽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등장한 뉴스 분위기에 몇 번 와르르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박장대소에 수줍게 웃음 지었다. 그와 한 달 동안 함께하는 동안 잘 어울리긴 했으나, 그는 너무나 진지해서 또래의 가벼움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격 없고 허물 없진 않았던 것 같다.


그땐 누군가 무언가에 충실하고 몰입한 모습을 ‘오타쿠’라 여기고 비웃던 문화가 있었다. 아마 거기서부터 ‘오글거린다’며 타인의 진지함을 가볍게 여기는 모양새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진지함을 비웃으면 상대적으로 산뜻하고 쿨해보였겠지. 학창시절은 누군가에겐 혹독하다. 아마 그 친구는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깎고 검열한 시간을 몇 번 마주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린 타인의 무게와 깊음을 매도해왔다. 한 달 남짓 함께한 친구라 이후의 소식은 모르지만, 그가 그만의 특별한 무게감을 잘 지켜냈길 내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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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는 기준에 맞춰진 모습을 ‘보급품’, ‘기성품’이라 표현했다. 사회적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넣는 누군가의 시선은 평준화로 다가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평균은 어떤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었다. 우리는 동그랗게 그어진 선 안에 삐죽삐죽한 스스로를 집어넣기 위해, 모난 부분은 잘라내고 패인 부분은 채워내려 부던히 애써왔을 것이다. 왜 그토록 누군가의 비난을 두려워했을까. 보통의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는 과잉에 대한 질책을 걱정하지 않고 내면의 욕구에 오롯이 집중해본 적이 있었나. 나의 과잉과 부족이 들통나는 게 그렇게 치명적인 일이었을까.


이제 이리저리 흔들려왔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심지를 굳혀보는 시간이 필요함을 생각해본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과하고, 무언가 넘쳐 흘러 너저분하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나의 과잉과 부족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오글거림’은 나에 대한 충실한 집중, 당당히 표출하는 자신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표현하는 다른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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