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 가면 만화 <달빛천사>의 주제가 ‘New Future’를 자주 부른다. 전주가 나오자마자 행복감이 폭발한다. 두 팔을 치켜들고 들뜬 기분으로 노래를 시작하다가 곧 울컥 감정이 솟구쳐 목이 메이기 일쑤다. 친구에게 주책스러운 모습을 들키기 싫어 가까스로 눌러내고 노래를 이어간다. 혼자 불렀다면 눈물콧물 흘려가며 엉망진창으로 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번 이 양극의 감정 기복을 겪는다. 그때 그 노래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중학교 때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컨트리 곡들을 수없이 들었다. 특히 한 달 동안 뉴질랜드에 머물 때는 매일매일 그의 노래를 듣고 흥얼거렸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마지막 남은 돈으로 ‘Speak Now’와 ‘Taylor Swift’ 앨범을 고이 사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앨범에 꽂힌 가사집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가사를 외웠고, 끊임없이 노래를 들었다. 그 앨범뿐이랴, 이전과 이후에 빼곡히 자리한 다른 곡들도 차근차근 내 플레이리스트를 채워갔다. 이후에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는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의 성장을 함께 했다.
어느 순간 테일러 스위프트는 컨트리에서 팝으로 장르를 바꿨고, 이후로 난 그의 곡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테일러 스위프트의 목소리가 유난히 그리움의 정취로 다가오는 것은. 마곡동 어느 카페에 앉아있던 날, 카페를 채우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목소리에 터져나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심지어 모르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옛날 그 목소리, 엇비슷한 컨트리 멜로디는 내 마음 속 깊은 어딘가를 심하게 건드렸다. 달빛천사의 노래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목소리는 도대체 무얼 쥐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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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한 영상을 봤다. 스노우 카메라 어플에 얼굴을 10대로 젊어보이게 만들어주는 보정 효과가 있는데, 그걸 보게 된 중년들의 반응을 담은 영상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빤히 바라보고, 고개를 이쪽저쪽 돌아보며 구석구석 살피고, 턱에 살포시 손을 얹어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빛. 입가엔 미소를 띄웠지만 눈시울은 빨개지며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얼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엔 많은 심정이 담겼다.
어렸던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괜히 날 설레게 했다. 스스로를 한없이 어여쁘게 바라본 덕분에 나도 나의 어여쁨을 금세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원래 어렸을 때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데. 고등학생 때, 친구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청춘의 아름다움을 청춘이 알게 된다면 그 아름다움은 퇴색될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의 사랑스러움을 모르기에 사랑스러운 거라고. 그러나 나는 알고 싶다. 매순간 떠올려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만끽하고 누리고 아껴주고 감사하고 싶다. 내 젊음과 활기와 생기와 가능성과 빛나는 웃음을, 열심히 예뻐하고 싶다.
<달빛천사> 주제가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날 자꾸만 울리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이 노래를 부르고 들었던 그때의 나는 투명한 표정에 해맑게 웃었고,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기대했고, 멋진 어른이 된 날 상상하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때가 아름다웠던 건 지금보다 작은 세상에 있어서였다. 그래서 조그만 것에도 환호하고 즐거워했고, 더 많은 걸 기대하고 꿈꿀 수 있었다. 세상을 알아가며 하나둘씩 지워간 선택지를, 그때는 모두 허공에 적어보며 기대감에 몸부림칠 수 있었다. 그 철없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 말갛던 모습을 잃어버린 게 슬퍼서, 나는 언제나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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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본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울고 웃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쉼없이 흘러버린 세월을 실감한 그 표정. 되감을 수도 재현할 수도 없는 과거에 필연적으로 슬퍼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담겨 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잔인하고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흘러버린 시간의 속도와 크기와 세기를 체감하고, 거스를 수 없는 그 확고한 방향을 맥없이 바라볼 뿐이다. 시간은 얼마나 두꺼운 장막을 드리우는가.
그러나 울음과 웃음이 겹쳐진 그 표정에는 과연 슬픔만 있을까? 나와 함께 했던 나에게 웃어주는 모습에는 회한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동안 많이 달려왔구나. 고생이 많았구나. 주름살이 한 겹 한 겹 그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느꼈을 정도로 지나간 날들이 쌓이고 쌓였구나. 지금 디디고 있는 모든 옛 시간에 보내는 감사가 있었고, 지나온 나에 대한 박수가 있었다. 우리는 매순간 포착할 수도 수정할 수도 없는 족적을 남길 뿐이라는 게 야속하지만, 옛날이 아스라이 보일수록 오늘이 선명히 빛난다.
옛 노래에 매번 울 정도로 그때가 그립지만, 난 오늘을 살 것이다.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어떤 너그러운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저 5분만 머무르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사진으로 더듬을 뿐인 내 앳된 얼굴의 홍조, 함박웃음 속에 깊이 잠겨서 그 순간을 온전히 음미하고 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내가 얻고 싶은 건 새롭게 펼쳐지는 삶보다는, 이제 바래진 기억을 잠시 선명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뿐이다. 오늘을 잃을 순 없다. 나는 엉성하고도 견고한 탑을 쌓았다. 서툴었던 초석이 그립지만, 이만큼 자란 내가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