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작가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는 말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자기만의 문체를 개발하는 데 금방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오랜 시간을 들여도 특징적인 문체를 구성하지 못한단다. 독보적인 문체를 가진 버지니아 울프가 제일 먼저 떠올랐고, 뒤따라 정희진 작가님도 떠올랐다. 정희진 작가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충격에 가까웠다.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낯선 문체인데, 그토록 단호하고 확신에 넘치며 사려 깊고 지적인 글이라니.
최근 긴 글을 써내고 있다. 평소 브런치나 안티에그에 올리는 글보다 분량이 대폭 늘어나니, 자연스러운 흐름과 짜임새 있는 구성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도무지 문장을 다듬을 수가 없다. 더 정확하고 전달력이 높고 매력적인 문장으로 손질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뭐랄까, 통쾌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고, 사용하는 단어도 겉돌기만 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나는 설명하고 주장하는 글을 주로 써왔다. 패션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파헤치는 글, 패션의 독특한 특성을 통해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글,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떠오르는 심상을 담아낸 글을 썼다. 내 글은 무언가를 고발했고, 숨겨진 사실을 드러냈고, 무거운 지식을 풀어냈고,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문장의 완성도보다 그 속의 의미를 빚는 데 집중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혼란스럽다. 언젠가부터 이슬아 작가님과 안담 작가님과 예진 작가님의 글에 반하게 되면서 문장을 꾸미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하게 꾸며낸다기보다는, 마음을 꼭꼭 담아 정성스럽게 적어낸 문장을 만들고 싶었다. 일필휘지보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는 문장에서 존경과 애정을 느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 연습을 시작했다. 그게 평일의 습작이었다. 하지만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언감생심 어울리지 않는 문체를 넘본 것일까?
원래 어떤 글을 썼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게 문체란 게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떤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해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나는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떠다니는 생각을 낚아채 물질의 세계로 데려와주는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방법이 뭐였더라? 예전에는 내 문장에 흡족해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주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을 재미없이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 같아 조금씩 꾸미려 들면 얄팍한 꼼수를 부리는 듯 뻔한 표현만 나타났다.
가수가 창법을 바꾸면 실력이 떨어지듯이, 내 문장도 회생의 여지 없이 실패해버렸을까 봐 한없이 두려워졌다. 창법 교체에 실패한 가수는 원래의 창법으로 되돌아오는데, 나도 에세이를 중단해야 할까?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작가님은 에세이와 칼럼과 소설을 가리지 않고 넘나든다. 나도 욕심내고 싶은데! (정작 내 글의 장르를 정의내리지도 못했지만.)
문제는 돈일지도 모른다. 목적 없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데 집중했던 시절과, 이제 글에서 기대하는 결과물이 잔뜩 생겨버린 지금은 너무나 큰 간극이 있나 보다. 욕심이 커져서 만족이 어려워졌거나, ‘돈 되는 글’을 쓰기 위한 세속적인 고민들이 문장을 더 어렵게 만들었거나… 멈추진 않을 테지만, 지금 겪는 혼란이 참 혼란스러워서 혼란스럽다. 정말로 그렇다.
요즘엔 아무리 글을 써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순간이 찾아오지 않아서 더 자신감이 닳아가는 중이다. 에세이는 매력이 없고, 칼럼(?)은 쓸모없는 추임새만 뒤섞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나름 4년이 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풋내만 맡는다. 여전히 서툴고 부족한 풋내기… 난 부정할 수 없이 쪼렙이다. 이렇게 혼란을 겪다가 나도 내 문체를 피워낼 수 있을까? 아직은 감도 못 잡아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일단은 지속적인 쓰기를 허락할 만한 수준이길 희망한다. 계속 써도 될 만큼의 상태, 딱 그만큼. 실력이라 정의할 수도 없을 만한 ‘괜찮은 상태’… 일단 계속해 볼 테니.
멈추진 않을 거다. 누군가 정리한 자료에 기대지 않고, 주석을 주렁주렁 달지 않고 순수한 속내를 털어놓는 글은 너무나 자유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