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에서 영국 유학의 비애를 들었다. 금전이나 외로움의 문제는 예상했기 때문에 각오가 잘 되어 있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분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적 지위의 변동.” 인구를 수직의 계급으로 나누려는 의미는 아니지만, 비슷하다. 백인의 국가에서 외국인, 그것도 아시안 유학생의 지위는 한국에 머무는 한국인의 지위와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호주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시도’했을 때의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인생 경험치와 영어 능력치를 쌓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떠났고, 도심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러나 오래도록 성과가 없어 한식당으로 눈을 돌렸다. 면접을 보러 간 네네치킨에 이력서가 10cm 가량 쌓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들 똑같이 성과가 없었고, 똑같이 차선택을 취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마저도 어려웠다. 난 카페나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했고, 서비스직만 가능했으나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다. 그 다음 선택지는 청소였다. 호주에서 한국인이 다수 종사하는 분야였다. 내가 만난 청소업체 대표는 일렬로 줄 세운 한국 대학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을 다녔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솔직하게, 우린 고생의 귀천을 따지며 공부해왔다. 대우 받으며 노동하기 위해 대학 졸업장에 집착해왔다. 한국에서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왔다는 타이틀은 호주에서 쓸모가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호주에는 호주의 엘리트가 있었고, 타국민은 이 나라에서 한 자리 찾기 위해 아등바등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커피를 사랑하고 카페에서 일한 경력이 풍부했다면, 또는 요리 실력이 받쳐줬다면 생존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경험이라곤 공부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호주에서 쓸모가 없었다.
더 발전된 도시로 갈수록 내 지위는 더 낮아진다. 아이러니하지. 누군가는 한국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정해진 코스를 착실히 밟았음에도 선진국의 환경을 누리기 위해 한국에서의 권력을 포기한다는 것이. 물론 그 권력 또한 무상함을 미리 알아챘기 때문에 내린 현명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국내보다 직업의 귀천을 덜 따지는 곳이니, 내 기분이 묘해지는 것도 한국식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뜽귱은 태국 여행을 가서 지위 상승을 맛보고 왔다고 했다. 상류층만 머물 것 같은 호화로운 호텔에서 여행을 즐겼다고. 동남아시아에서의 한국인은 이런 모습이었다. 아, 문제는 GDP였다. 출신 국가의 GDP에 따라 사회적 계급과 대우가 결정되는 세상이었다. 실제로 ‘GDP 차별주의’라는 용어가 있다. 같은 흑인이더라도 미국 출신의 흑인보다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을 더 차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부 앞에서 초라해진다.
호주 워홀로 해외살이와 유학에 대한 로망을 많이 벗겨낼 수 있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유학생이라는 보편적인 고생도 낭만처럼 포장되곤 했는데, 지위의 변동 앞에선 자존심이 남아나지 않았다. 유학의 목적이 스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이 또한 선진국의 지위에 편승하는 걸지도 모른다. 유학을 향한 맹목적인 동경이 그 계급적 판단을 설명한다.
요즘 정희진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듣는다. 내 생일에 좋아하는 친구가 이용권을 선물해주었다. 활자로만 읽던 작가님의 생각을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마침 유학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한국의 엘리트가 유학을 하며 해외의 자료는 방대해지는데, 우리는 해외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미처 다 벗겨내지 못한 유학에 대한 환상이 잠재워지는 순간이었다. 진득한 미련처럼 남아있었는데… 석사과정을 끝마치지도 못했으면서 자꾸만 그 다음 단계를 넘보게 된다. 공부를 얼마나 이어가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 지독하게 남아서 국내의 훌륭한 선구자들께 배우는 복을 알아차려야지.
*10분 지각으로 평일이 아닌 습작이 되어버렸네요. 호옥시나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