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재생

by 희량

이츠의 <사라질 사람, 사라질 사랑>이라는 노래에 꽂혔다. 한 번 꽂힌 노래는 무한히 들어야 하는 습성은 여전하다. 이 습성 덕분에 한때의 기분과 냄새와 정취를 노래에 완전히 담을 수 있다. 노래 한 곡이면 타임머신을 타는 것처럼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모든 장면과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과거를 그리워하다 보면 문득 지금도 과거가 될 순간을 지나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이츠의 노래를 수백 번 반복해 듣는 여정을 앞두고 있는데, 난 또다시 현재를 과거로 기록하는 순간을 마주했음을 알아차렸다. 2023년 겨울의 유독 차가운 공기 냄새, 비천당을 지나며 느끼는 세월의 흐름, 여전히 어여쁜 성균관의 모습을 아껴보고 싶은 아쉬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껍고 행복하면서도 하기 싫어 몸부림치는 망나니 같은 내 모습, 올해 내가 했던/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고민, 사라짐에 대해 느끼는 허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시간들. 요즘의 시간들이 모두 이 곡에 담길 것이다.


여전히 윤하의 <봄은 있었다>를 들으면 야자가 끝난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통학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생각난다. 홍새킹과 작은 일로 웃어제끼고 미래를 기대하며 조용한 비명을 질렀던 순간들도 연달아 떠오른다. 새천년 건강체조를 들으면 체육시간 누구보다도 정확한 자세로 체조하며 깔깔거렸던 내 모습이 생각나고, 나무로 둘러싸인 낮은 운동장이 생각난다. 영화 <윤희에게> OST를 들으면 인턴 시절 지하철을 타고 통근하던 그 긴장감 어린 순간이 떠오르고,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들으면 T타워에 상주 근무할 때 거닐던 4월의 청계천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곡 하나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테일러 스위프트는 어떤가. 내 10대와 20대를 관통하는 목소리다. 테일러의 목소리는 1초만 들어도 엉엉 울 수 있다. 슬플 것도 없는데 눈물이 난다.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사무치나 보다. 음악은 이토록 신통하다. 가수의 목소리, 가사, 멜로디가 중첩되며 거대한 감정을 일으킨다. 난 그 감정에 벅차올라 허우적대며 곡을 듣는다. 수백 번 반복해 들을 정도로 빠져들 수 있는 것도 곡 하나가 주는 커다란 위로와 희망과 행복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된 청취가 쌓여 음악에 시간이 묻어난다. 음악은 청각적임에도 오감을 구현한다. 이렇게 음악은 특별한 일기가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이츠의 곡을 벌써 열 번도 넘게 들었다. 어김없이 음악으로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는 아득한 과거가 되어 꺼내보겠지. 시간의 통과는 언제나 순식간에 일어나고, 우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지나갔음을 통렬히 깨닫는다. 이 노래에 지금 지나는 시간을 기쁘게 담고 있음에도, 아마 미래엔 그리움과 아쉬움, 슬픔이 한바탕 더 섞일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방향은 늘 고통스럽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흠뻑 현재를 느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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