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대화

by 희량

11월 12일 자정이 넘은 깊은 밤. 애인한테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걸 실패했다. 기분이 이렇게 처참할 수가 없다. 심지어 그는 이해하려고 귀 기울이는 아주 드문 한국 남성임에도... 나는 언제 정희진 작가님처럼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을까? 아주 묘연해보이는 일이라 절망적이다. 나는 애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고, 그의 반박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치미는 감정을 제대로 갈무리하지도 못했다. 여러모로 처절한 실패였고, 이 대화는 패배와도 같았다.


한국 남성과 페미니즘의 사이는 복잡하다. 2010년대 점화된 젠더 전쟁으로 여전히 한국 남성과 페미니즘은 대척점에 서 있다. 이들은 험악하게 부딪혔고, 끊임없는 충돌을 통해 각자의 세력과 목소리를 키웠다. 그렇게 한국 사회의 젠더 담론은 아주 극단적으로 양분화되었다. 난 그래서 여전히 내가 페미니즘을 잘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분노와 경멸을 마주하면 말문이 막혀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애인과의 대화에 성공했어야만 했다. 페미니즘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말하는 내용을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남성에게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이 사람에게 페미니즘을, 내가 사고하는 내용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난 어느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을 테니. 애인과의 대화는 내가 내 주변 남성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가장 처음의 허들이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기에 이리도 참담하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미웠다가 미안했다가 복잡한 감정이 들끓는다. 자기한심도 섞이고... 찜찜함이 계속 남아 나를 괴롭힌다. 통렬한 실패다. 나는 애인한테 너가 가진 관심 정도로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여기까지인 거라고 말했다. 너의 관심없음이 문제라며, 나의 실패를 그의 실패로 전가했다. 그의 지적대로 비겁했다.


이삼십 대 한국 여성이 연애를 하면서 애인과 페미니즘 관련 문제로 몇번이나 부딪힐까? 페미니즘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별과 젠더로 파생된 문제 때문에 많이들 싸워댈 것이다. 뭇 커플이 숱하게 겪은 명절이라는 고질적 문제도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수도 없이 싸웠음에도 훌륭한 대화법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가 분노에 못 이겨 흘리고 만 표현을 빌리면, 나의 페미니즘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며 피해의식이 가득하고 모호하고 어긋나고 뒤틀렸다. 공감한다. 하지만 남성중심적 제도의 언어로 얼마나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겠나? 이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페미니즘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모호하고 어긋나고 뒤틀린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단언하면서도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 그 정도로 복잡하다.


여기까지 적어두고 애인과 다시 싸우러 갔다. 달이 기운 더 깊은 밤이었다. 차분히 접근했는데도 어김없이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상식이라 여겼던 것이 그에게는 상식이 아니었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감정의 격차가 자꾸만 대화를 빗나가게 만들었다. 난 그가 의도적으로 귀를 닫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의 시도가 번번이 막히는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서로 어긋난 채로 두어야 할까? 넌 거기에, 난 여기에, 굳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을까?


절망감을 안고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의 대화는 흘러흘러 갔고, 문득 난 무언갈 깨달았다. 그가 거부감을 크게 느끼는 부분이 어딘지 보였다. 내가 가진 한국 남성에 대한 불만, 그 일반화된 감정이었다. 물론 나는 애인과 아빠를 비롯해 내가 애정하는 남성들은 그 불만의 대상으로부터 치워두었고, 불특정하고 형체가 없는 남성 집단을 따로 상정하고 미워했다. 그래서 그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여성들에게는 자신이 불특정하고 형체 없는 그 집단에 똑같이 들어가는 거라고 말했다. 내가 제외해줬다고 고마운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에게는 자기가 여타 범죄자들이나 이상한 놈들과 구분되지 않고 똑같이 경계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 끔찍하다고 했다.


그는 평소 길을 걸을 때, 지하철을 탈 때 자신이 얼마나 조심하는지 말했다. 어떤 작은 오해라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시선과 행동을 검열한다고.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는 한국 남성으로 묶일 때 평준화되어 깎이는 그의 특징들이 싫었다고 한다. 내가 한국 남성을 비판할 때 일반화된 경향이 있음을 인정했다. 예를 들어 개인의 구체적인 상황과 생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곤 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이 지속적인 젠더 전쟁을 부추길 수도 있지… 물론 여성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우리는 불통의 시간을 지나고 비로소 합의를 봤다. 사회적 문제를 말할 때는 집단을 주체로 세울 수밖에 없겠지만, 개인을 향하는 비판(또는 비난)은 유의하기로 했다. 난 애인의 태생을 문제로 넌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했지만, 틀렸다. 나도 나대로 이해하는 게 페미니즘이고, 정희진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페미니즘은 상황을 해석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젠더 문제가 우리의 대화로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실패한 대화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기 때문에 둘 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애인 사이는 젠더 문제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사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라는 치트키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준수한 대화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남성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아빠에게도 실패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나와 가장 많이 붙어있는 남성으로서 애인과의 대화가 가장 절실했다. 화해와 합의로 귀결될 당신의 다툼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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