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굳이굳이 시간을 들여 정성스러운 일을 하는 것. 일상을 살뜰하게 챙기는 법을 생각해본 날이 있었다.
오후 느지막이 동네 카페에 갔다. 지도에서 우연히 보고 예전부터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곳이다. 푸딩을 만들어 판다고 해서 몹시 유혹적이었다. 조용한 골목길에 몇 평 남짓한 작은 카페였다. 구석구석 사장님의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지는 깔끔한 공간이었다. 싱그럽게 이파리를 펼친 화분들이 매우 귀여웠다. 두셋이 앉을 만한 식탁에는 꽃병이 놓여있었는데, 글쎄 생화 한 묶음이 꽂혀 있었다. 연분홍색 장미가 송이송이 피어있고, 길고 가느다랗게 뻗은 이파리, 작은 잎들이 알알이 달린 풀이 장미와 어우러져 있었다.
생화에 감동한 나는 다른 식탁들도 유심히 둘러보았는데, 심지어 식탁마다 꽃뭉치의 구성이 달랐다. 건너편 식탁엔 해바라기를 닮은 노란 꽃뭉치가 있었다. 물론 줄기를 싹둑 잘라버린 식물에겐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만... 난 거기서 기운찬 기분을 느꼈다. 아직은 생생하게 자연의 맥동을 전하는 생화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활달하게 바꾼다. 이런저런 상상도 하게 되었다. 분명 사장님은 출근하기 전에 꽃집에 들러서 꽃다발 몇 묶음을 사오셨겠지. 어쩌면 카페 사장님은 근처 꽃집 사장님과 모종의 거래를 하셨을지도 몰라. 맛있는 푸딩을 드릴 테니 남은 꽃송이과 이파리들이 있다면 건네주지 않겠느냐고. 사장님의 바쁜 출근길엔 어떻게 꽃을 챙길 여유가 있을까. 번거롭고 수고로울 수 있는 일들은 일상에 감동을 선사한다. 일상의 질감을 바꾼다. 매일 반복되는 이 권태로운 하루들을 정성껏 챙기는 누군가의 손길.
시간을 들여 정성스러운 일을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내 일상을 챙기기 위해서 수고로운 것들에 몰두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 삶에 나는 어떤 정성을 쏟고 있지.
예전에 어떤 게임 기업에서 베타 게임을 출시했을 때, 사람들은 지도도 없는 컴컴한 곳을 무작정 뒤져가며 게임에 적응해갔다고 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알아서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서로 정보를 공유했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그 놀라운 과정은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현실 시간 기준으로 두세 시간 동안 게임 속 먼 곳까지 이동하곤 했다고 한다. 이동하는 데에만 두세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요즘에는 워프 없는 게임이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불편과 비효율을 참지 못하게 되었고 행동의 의미를 따지며 무의미한 행동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굵직한 알맹이들 사이사이의 공백을 위해 다시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 있을 때, 어떤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난장판, 중구남방, 아수라장 속에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기적적으로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는 협력도 있고, 정성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그 베타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즐겁게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즐거움의 힘이란 놀랍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즐겁고 재밌다는 이유로 열심히 해내는 사람들의 힘은 놀랍다. 이런 기적적인 힘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그 잠재력을 싸움이 아닌 생활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또 다른 여름날.
오늘도 생화를 꽂아두는 그 푸딩 카페에 왔다. 지난번에 두 번째로 왔을 때 살짝 장미꽃잎이 벌어져 있었는데, 다시 생생히 다물린 장미로 바뀌어져 있다. 사장님은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여서 싱그러운 꽃을 데려오는 걸까. 그 사이 신메뉴도 생겨 있었다. 동네 친구가 좋아하는 무화과로 만들었다는 푸딩. 반가운 소식을 정하고 조만간 먹으러 오자는 약속을 했다.
아, 이렇게 하루의 시시콜콜한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글은 일상의 사이사이에 부지런히 써야 쌓일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들에는 5년 전, 10년 전의 이야기가 모아져 있다. 핸드폰 화면 속에, 컴퓨터 모니터 속에 파편으로 저장되어 있는 글들이 활자를 얻기까지 오래 묵히고 삭히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빈둥거리는 시간에 기록을 한다면 나는 수십 권의 저작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란 오늘의 작디 작은 순간에서 출발한다. 오늘 읽은 조금의 구절, 오늘 쓴 조금의 문장, 오늘 보고 들은 조금의 새로운 이야기들... 그러니 작게 쌓아가면 그만인 하루였다. 그럼에도 나는 대단한 일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하루.
하지만 계속 짤막한 문장들만 쌓다가 이런 고민이 드는 것이다. 이 파편들이 이어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계속 이렇게 내 문장이, 내 시간이, 내 하루가, 내 삶이 조각난 채로 머무르면 어떡하지. 그래서 내 삶을 정의할 수 없어지면 어떡하지. 내게는 내 삶을 적당히 보기 좋게 만든 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큰데. 나를 커다랗게 증명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작고 작은 조각들이 아무런 규칙 없이 모여 있는 오합지졸뿐이라고...
작은 조각으로도 의미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말과 글들이 많다. 무화과 푸딩에 기뻐하는 삶은 그리 거창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깔끔하게 닦인 조각 하나를 즐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가. 작은 것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선 중산층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마음가짐이면 누구나 그 여유가 허락된다는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한다.
난 분명 거대해지는 나의 미래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들은 거대한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중요한 것들과 하등 상관이 없었다. 내 인생의 과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삶의 방식에 오롯이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난 생각보다 명예를 추구한다는 걸 점점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내 삶의 기준이 타인이 되었을 때의 고단함, 지루함을 경계하고 싶다.
어쨌든 중요한 건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에서 힘멜은 마왕을 쓰러뜨리러 가는 용사 친구들과의 여정이 시시하고 별 것 없어서 좋다고 그랬다. 빙수 만드는 마법 따위를 찾았다며 기뻐하는 프리렌과 하이터를 바라보면서. 용사들이라고 하면 비장하고 숭고하고 거칠고 악착같은 여정을 생각할 텐데, 이들은 마왕을 쓰러뜨리러 가면서도 주변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음미하며 다녔다. 천 년을 살고 엄청난 마법 능력을 지닌 프리렌조차도 가장 좋아하는 마법을 꽃밭 만드는 마법이라고 소개한다. 하찮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아끼는 프리렌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자꾸 벅차오르고 눈물이 났을까? 가장 대단하고 은밀한 인생의 법칙을 깨달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 시대에 얼마나 소중한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정성을 쏟는 것은 삶을 반질반질 빛이 나도록 닦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