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서 전통 문화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빛은 그림자를 동반하지만, 그림자를 외면하면 밝고 찬란한 부분만 보고 살 수도 있다. 모두가 기뻐하고 환호하고 즐거워할 때 그 이면의 그늘을 들추는 것은 불필요하고, 불편하고,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림자를 외면할 수 있을까? 이미 세계의 권력 구조가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싶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정말로 모두가 말하는 것만큼 반갑고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인지.
우선 미디어에서 반복되는 특정한 형태의 한복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검, 곡도, 신칼과 같은 유물이나 까치와 호랑이, 각종 음식, 한의학 등등 여러 한국 문화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아래는 국가유산청 공식 블로그인데, 케데헌에 나온 유물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더불어 케데헌은 패딩 입은 사람과 반소매 입은 사람이 공존하는 모습을 재현하면서 한국 특유의 날씨와 기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는다거나 신발 신고 침대에 올라가지 않는다거나, 한국인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들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포착되고 회자되고 있으니, 그 문화를 잘 고증했기 때문에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케데헌에 열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것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이 콘텐츠는 누구의 것인가? 라면용기에서조차 케데헌을 발견할 수 있는 지금, 그 라이센스가 우리나라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은 크게 마음에 걸린다. 케데헌은 어디까지나 일본 기업의 기술과 미국 기업의 자본으로 해외에서 제작된 콘텐츠였다. 케데헌의 인기는 국위선양이라기보다는 남의 집 곳간 불리기로 읽을 수도 있지 않나. 어쩌면 우리나라의 문화가 그만큼 ‘매력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더 그 매력을 알아보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리의 문화를 탐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느렸다.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둘째,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내용을 제작했다면 어떤 반응을 얻었을까?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충분히 문화적인 파급력을 가졌을 거라고 자신할 수도 있지만, 케데헌의 인기에 ‘선진화된 해외’의 영향력을 분리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영어의 틀을 갖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프레임을 거쳤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콘텐츠로 포장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셋째, 이 작품에 사용되는 유물은 어떤 기준에서 채택되었을까? 한국의 전통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 유물은 주인공의 무기로 렌더링되면서 화려한 색깔을 얻었다. 애니메이션화하기 좋은 요소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전략적인 접근이었을 것이다. 시각적인 매체에서 한번에 대중의 주의를 끌 수 있는 화려한 색감과 무늬를 활용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미디어의 시대에 ‘활용할 만한’ 전통을 발굴하는 방법일 것이다. 비서구 국가의 전통은 시장 가능성이 인정되는 것만 취사선택된다. 그리고 그 시장 가능성은 서구 중심적인 대중의 시각을 자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넷째, 케데헌의 인기 이후 전통 문화를 대하는 우리나라의 자세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 기업에서 우리의 전통 문화를 활용한 여러 굿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호랑이 배지, 갓 모양 키링까지. 사장의 위기를 논하던 전통 문화가 주목을 얻자, 전통 문화는 상품화되었다. 전통 갓을 만드는 장인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거나, 호랑이와 까치에 관한 역사적 맥락을 설명한다든지, 전통문화에는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깊고 자세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애니메이션은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것에 그친다.
전통 문화는 좋은 ‘재료’가 되는데, 그 재료는 역사적 맥락이나 가치가 상당수 약화된 채 시각적인 이미지, 이국성을 재현하는 데에만 활용되곤 한다. 이때 비서구 국가의 문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시성을 확보한 그 자체로 좋은 일이라 여겨지곤 한다. 그게 또 판매와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을 의식한 경제성, 상업성과 별개로 우리의 역사, 지나온 시간의 생활 방식을 궁금해하면서 전통 문화에 파고들 수는 없을까?
내가 말하고 있는 건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는 개념인데, 지배적인 문화(보통 서구)가 그렇지 않은 문화(보통 비서구)를 차용할 때 드러나는 문화적인 위계질서를 비판한다. 물론 케데헌은 함부로 도용한 듯한, 존중하지 않는 듯한 시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긍정할 요소가 많다. 게다가 미국계 한국인이 중심이 되어 제작했으니 외부자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구 중심의 질서를 답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제안하고 싶은 건 한 발짝 떨어져서 또 다른 관점을, 이면을 함께 검토해보고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이 글은 딴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시각이 매우 부족한 편이므로 더 비판적인 어조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근대화와 세계화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는 많이 없어졌고, 상징적인 것만 남아 있고, 남아 있는 것마저 홀대받는 편이다. 나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케이팝은 해외의 여러 음악이 섞인 혼종적인 음악이라 우리의 것이라 말하기 모호하다. 어쩌면 이것이 세계화 시대 문화의 본질일 것이다. 우리는 전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발굴하고 탐구할 것인지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케데헌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더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
이 글은 단대신문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