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쯤 전인가, 산리오에서 태닝된 키티가 나왔다. 그런데 왜 피부색이 어두운 키티가 아니라 태닝된 키티라고 하는가? 물론 본래 키티가 하얗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태닝이라고 하는 순간 기존의 키티색은 인형의 털색이라기보다는 ‘피부색’의 의미를 갖게 된다. 태닝은 밝은 피부를 어둡게 태우는 행위가 아니었던가? 키티는 흰 털이 아니라 흰 피부를 가진 인형이 된 것이다. 키티는 피부색이 다른 새 친구를 가지는 대신 백인이 되었고, 흰 피부와 어두운 피부는 모두 백인 키티를 나타내는 이미지가 되었다.
키티뿐만이 아니었다. 태닝이 끼어드는 순간, 여러 피부색을 ‘즐기는’ 건 백인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백인 셀러브리티는 ‘너무 밝지 않게’ 피부를 태닝한다고 들었다. 아리아나 그란데, 켄달 제너, 킴 카다시안은 옛날엔 피부가 희었는데, 요즘엔 ‘적당한’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다. 그 ‘적당한’ 피부색은 태닝을 한 결과인 줄도 잘 모를 정도로 자기 이미지와 동일시되어 있다. 왜 이 백인 여성들은 피부톤을 일부러 낮추고자 하는 것일까? 정기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며 지속할 정도로 태닝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태닝이 (백인의) 미용에서 강조된 배경에는 계급적인 맥락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로 노동 계급은 실내에서 일했고, 오히려 햇빛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릿빛 피부’는 여유롭게 해변에서 태닝할 수 있는 상류층 백인의 전유물이었고, 20세기 초반부터 태닝된 피부는 계급과 자본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다. 특히 자연스럽고 균일하게 피부를 그을리기 위해서는 비싸고 정성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다. 해변이나 수영장의 선배드에서 직접 태닝하거나 스포츠를 즐기면서 야외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고른 태닝을 위한 태닝샵 방문을 병행하고, 바디 오일 등의 미용 제품을 함께 발라줘야 한다.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는 시간과 금전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상류층을 선망하는 다른 계급의 대중들이 태닝에 참여하면서 구릿빛 피부와 태닝이 확산되었다.
태닝을 하는 흔한 이유는 '건강해보이는 인상'이다. 하지만 건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태닝은 피부가 오랫동안 자외선에 노출되어 손상이 축적될 수 있기 때문에 모순된 지점이 있다. 자외선 노출이 피부에 해롭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태닝한 피부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이미지로 굳어진 것일까. 이는 구릿빛의 피부 그 자체의 이미지가 아니라 태닝을 즐겨온 백인 상류층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영향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이 많고 계급이 높을수록 건강한 음식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운동을 포함한 자기관리에 쏟을 충분한 시간이 있다. 태닝의 건강한 이미지는 이들이 가진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결부된 것이다.
이처럼 태닝은 마치 백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물론 유색인종 역시 태닝을 즐기고, 흑인도 계절에 따라 피부 톤이 달라지며, 이를 기호에 따라 의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용으로서의 태닝을 즐기는 세계는 철저히 백인 중심적이다. 백인의 구릿빛 피부와 비백인의 구릿빛 피부는 같지 않다. 백인의 신체적 요소를 모두 갖고 있으면서 적당한 톤의 구릿빛을 가지는 것이 태닝 미용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백인의 태닝은 건강함, 부유함, 여유 등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흑인이나 라틴계 등의 다른 인종이 가진 이미지를 이용하고 전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피부색이 어둡기 때문에 받는 차별 등에 공감할 수 없는 주체가 이미지를 위해 피부색을 이용한다. 이렇게 메이크업 제품이나 성형 수술 등의 미용을 통해 인종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혼혈처럼 보이게 만드는 백인의 행동을 두고 "블랙피싱(Blackfishing)"이라는 말도 생겼다.
누군가는 일부러 태닝하고,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인종은 여전히 차별받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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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해온 시간을 걸어 왔다. 하지만 그 구분이란 얼마나 모호한가. 피부색이 기준이라기엔 백인은 피부를 태웠고, 어둡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받지 않았다. 차별의 기준은 피부색이 아니었다. 백인이 아님을 나타내는 모든 특징이 차별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기준은 아름다움을 판별하는 기준으로도 강력히 작용하면서,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밝은 곳과 그렇지 않은 어두운 곳을 구분한다. 여기서 외면받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 아시아인으로서의 한국인 역시 이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때로는 차별을 하고, 때로는 차별을 당하며 무의미한 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린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눈에 보이는 특징들은 얼마나 무용한가.
참고문헌
Polovick, M. (2017). "Orange is the new black": The skin-tanning phenomenon and its influence on perciption of race, class, and gender. Senior Independent Sutyd Theses. The College of Wooster.
Voices. (2020, December 8). Let's talk about 'blackfishing' and Aussie beach culture. Voices. Retrieved from https://www.sbs.com.au/voices/article/lets-talk-about-blackfishing-and-aussie-beach-culture/44g8ocgnp
본 글은 단대신문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