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아니 계기

이번 여행은 왜 떠나게 되었는가?

by 라영이

2024년 5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그리고 지금, 2024년 11월, 나는 스페인에 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5월 중순, 치료받던 질병이 "이제 꾸준히 약 한 알씩만 먹으며 살면 되겠어요!"라는 상태로 회복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대한항공에서 이메일이 왔다. 올해 마일리지가 소멸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겸 몸 상태 때문에 지난 몇 년간 해외에 나가지 않았다. '마일리지 소멸'은 그런 나를 꽤나 자극했다. 그렇게 나는 대한항공의 협박(?)에 넘어가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목적지는,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도시 중 안 가본 곳. 그리고 저가항공이 아닌 대한항공을 타고 갈 거니까 이왕이면 멀리 미국이나 유럽.
(사실 아프리카나 남미도 마일리지로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면 갈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팩트체크가 안 된 채 들은 얘기지만.)


1. 미국, 유럽 중 어느 도시를 갈까? 안 가본 곳으로.
2. 언제 가지? 비성수기에 가자.
3.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에 맞춰 떠날까?
4. New Year 불꽃놀이도 보고 오자!
5. 3월엔 일이 많으니 서울에 있어야 한다.
6. 오, 내가 판타지처럼 그리던 포르투갈도 포함되네?


이런 고민 끝에 비성수기 in, 비성수기 out으로, 마드리드 in 리스본 out 티켓을 끊었다.
예매를 끝내고 보니, 여행 기간은 정확히 3개월. 2024년 11월 23일 출발, 2025년 2월 22일 입국. 총 9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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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한항공의 협박 때문이었을까?

지난 반년 동안 나는 "대한항공의 협박 때문에 3개월 여행을 가게 됐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사실일까? 아니다.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소멸 이메일은 단순히 정보 제공용 메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메일을 핑계 삼아 즉흥적인 결정을 내릴 만한 내면의 상태였다. 지난 몇 년 꽤 오래 멈춰있던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이 움직이게 만드는 자극이 아니었을까?

출장이니 여행이니 해외를 자주 다녔지만, 이렇게 즉흥적인 선택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번 결정은 무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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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시작, 그리고 여행

여행지에 와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됐다. 이 또한 즉흥적이었는데, 브런치가 내게 은혜를(?) 베풀었는지 한 번에 됐다. 그렇게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첫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덕분에 이번 여행의 시작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여행이 시작된 지 7일 째다. 나는 이번 여행이 예전의 여행과 다르다고 느낀다. 아니, 내가 예전 여행하던 때의 나와 다름을 느끼고 있는 것 일지도. 후자가 더 맞는 말이겠다. 지난 몇 년 내가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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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해 보니 이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다.

뭔가 좀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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